[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선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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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시카고)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으로 영원한 현재의 예정에서 구원할 자를 선택하시고 나머지는 유기하신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과 유기가 나누어지는가? 선택의 이유가 인간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개혁주의의 입장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씀처럼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이고 사탄의 백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부패한 상태에 있다.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부패하고 똑같은 죄인이다. 여기에서 똑같은 죄인이라는 말은 죄의 본질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 죄의 씨앗이 자기가 처한 내적 및 외적 환경에 의해 빨리 성장하기도 하고 느리게 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과 21세기의 최첨단 사회에서 수십억의 무리와 함께 부대끼며 사는 사람의 죄의 성장 속도와 열매는 차이가 있다. 무인도에 사는 사람에게 죄의 열매란 작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인도에 사는 사람은 죄가 적고 현대문명에서 사는 사람은 죄가 크단 말인가? 죄의 본질을 고려할 때 그렇지 않다. 만약 이 둘이 사는 환경을 바꾼다면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것이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성격, 유전자, 건장, 나이, 성별, 그리고 능력에 따라서도 죄의 성장과 열매는 다르게 나타난다. 태중에 있는 히틀러, 한 살의 히틀러, 10살의 히틀러, 40세의 히틀러, 50세의 히틀러가 맺은 죄의 열매는 분명 차이가 있다. 어렸을 때의 히틀러가 맺은 죄의 열매는 그가 죽기 전에 맺은 열매와 비교할 때 분명 작다. 그가 처한 삶의 정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죄의 씨앗(본질)이 전생을 통해 있었다. 그러므로 죄의 본질로 볼 때 모든 사람은 똑같이 부패했고 똑같이 죄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유기한 이유는 선택받은 자가 유기된 자보다 더 나은 어떤 선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일부 신학자는 모든 사람이 부패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각 개인의 미래를 보고(예지에 의해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죄인의 미래를 미리 보니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름에 반응할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선택을 사차원의 시·공간에 제한한다는 단점이 있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하나님은 초월적 차원에 계신 분이고,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초월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은 과거에 이루어지지 않고 영원한 현재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미래를 보고서 과거에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과관계에 지배받지 않는다. 인과관계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사차원의 시·공간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직선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과거가 원인이고 미래가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에게 시간은 선이 아닌 오히려 평면이나 입체와 같다. 하나님의 선택은 피조세계가 경험하는 인과율에 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과거건 현재건 미래건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 있는 어떤 선함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선택이 결정되는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선택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하나님이 누구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단지 그 이유가 사람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에게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있는 어떤 이유, 또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인가? 이것은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 선택의 기준은 초월적 차원을 경험하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일부를 선택하고 일부를 유기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부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선택하고 또 일부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죄 가운데에 살기 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면서 유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