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태환 칼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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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편집인 겸 논설위원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전 회장은 해마다 새해를 도쿄에서 맞은 것으로 유명하다. 도쿄구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는 사업 아이디어를 거기서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서 얻은 정보로 차관을 들여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를 지었다. 이후 보험, 섬유, 매스컴, 전자, 중공업, 석유화학 등 삼성의 거의 모든 사업이 도쿄발이었다.

한국비료는 그러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철퇴를 맞는다. 1966년의 일이다. 건설 과정에서 수십억대의 정치자금이 빠져나가고, 삼성은 이를 벌충하기 위해 밀수를 하고, 정부는 이를 눈감아 주었다고 의심되는 사건이었다. 결국 삼성은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한다. 이 사건 때문에 김두한은 국회에 오물을 투척했고 , 장준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밀수두목’이라고 불렀다. 이들 모두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의 미쓰이 물산과 일본 정계의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유력 정치인과 최고위 관료들에게 흘러간 정치자금이 30억엔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의 기간산업 육성이라는 프로젝트가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대표적 사건이긴 한데 큰 프로젝트마다 정경유착은 필요악 처럼 따라 붙었다.

이 전회장은 사업 구상만 일본으로부터 가져온 것 같지는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가 1961년 설립된다. 이 협회의 초대회장은 이병철 전 회장이다. 주지하다시피 전경련은 일본의 경제단체 연합회(경단련)을 흉내낸 조직이다. 경단련은 자민당 출범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적어도 2010년까지 일본 정경유착의 핵심으로 군림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전하는 외신이 공통으로 지적한 것이 정경유착이었다. 지금 조기대선에 나선  문재인 후보가 강조하는 적폐의 1순위도 이것이다. 일본에서 한국에서 반세기 이상 체계화한 정경유착은 때로는 관례로, 관습으로 고착화했다. 정권은 돈이 필요하고 기업은 정권의 비호가 필요하다. 이 상호의존적인 구조가 정경유착이라는 적폐를 만들었다.

적폐가 관례로 익숙해 진만큼 적폐를 없애고자 하면 반발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박정희 찬양은 그 적폐가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동력이었다고 믿는데서 나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길들여져 왔다. 알량한 우월적 지위라도 있으면 소위 갑질을 하고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오랜 세월, 담배 한갑이라도 쥐어주어야 증명서 발급이 빨라지고 허가가 쉽게 났다.  그게 사람사는 질서였다.

지금 한국의 대선 캠페인을 따라 읽다보면 적폐청산, 통합, 포용, 화합 등 구호가 난무한다. 뭔가 바꿔야 한다는 여론은 분명히 있는것 같은데 무엇이 청산 대상이고 또 무엇을 포용해야 하는지 모호하다. 청산과 포용, 화합, 대탕평 등은 단언컨대 보수에서 중도로 돌아선 부동층을  의식한 전략일 뿐이다. 뇌물, 정경유착이 청산대상이라면서 구체적 해결방안은 내질 못한다. 대결구도로는 물리적 청산은 가능할  수 있어도 포용, 화합의 단계로 발내딜 틈은 없다.

이권이 모두에게 배분될 수 없는 한 뇌물은 어디든 여전하다. 미국서 급하게 증명서든 뭐든 발급받으려면 급행료가 있다. 예를 들어 여권 갱신에는 110달러가 든다. 통상 4주에서 6주가 소요되는데 신속처리비용 60달러로 추가로 내면 2, 3주 내에 여권을 받을 수 있다.  ‘엑스퍼다이트 피’(expedite fee)로 양성화한 급행료다. 아는 사람 줄댈 필요없이 필요하면 돈 더 내면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공평을 이루자는 제도다.

한국에서의 적폐란 그때는 용인되고 통용되었으나 지금은 바꾸고 고쳐야 하는 사회적 병리다.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의식의 혁명이 일어나야 치유할 수 있다. 대선후보 몇몇이 나서서 물리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이민 온 시점의 한국 수준에 멈춰있기 십상인 이곳 한인사회에는 적폐가 없는가.  ‘다수가 모여 하나’인 미국에서 소수가 모여 갈라선다. 선거만 했다 하면 소송이 나고 큰 교회는 어김없이 깨진다. 이것도 적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