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다시 ‘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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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시카고>

물건을 둘 곳이 없어서 거기에 둔 줄 알았다. 대형마켓에 가면 통로나 입구에 물건을 쌓아 두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생수들도 있고 음료수나 과자들도 쌓여있다. 그런 상품들은 원래 전시되어 있던 코너에 가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상품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와서 창고에 공간이 부족해서 할 수없이 밖에 쌓아 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야 알았다. 그렇게 통로에 상품을 쌓아두는 조건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은 물건을 만든 제조업체들로부터 수십만불에서 수백만불씩 광고비로 받고 있는 것이었다. 한 제조업 사장님 말씀이다. “텔레비젼이나 신문 또는 온라인으로 광고를 하는 것보다 그렇게 통로에 물건을 쌓아 두는 것이 훨씬 더 잘 팔립니다.” 사람들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물건을 더 잘 집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은 리차드 탈러(Richard Thaler)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다. 모든 사람이 인간의 합리성을 가정하고 경제학을 공부할 때 탈러교수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주목한다. 인간은 비합리적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한 경제학이 행동경제학이다. 그리고 탈러교수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학교 법대 교수와 함께 저술한 책이 바로 ‘넛지’다.  넛지는 영어로는 ‘Nudge’라고 쓴다. 이 말은 ‘팔꿈치 같은 걸로 남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기’라는 뜻이다.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노래를 시키거나 무대로 나가라고 할 때, 팔꿈치로 옆 사람을 슬쩍 툭툭 치면서 상대에게 뭔가를 권하는 행동을 넛지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또는 잘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선택이나 일을 하게끔 넌지시 권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넛지의 부제목은 ‘건강,부,행복에 관한 의사결정개선’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넛지’의 몇 가지 예들이 있다.

먼저 학교에서 급식을 할때 건강에는 좋지만 학생들이 잘 먹지않는 브로콜리와 같은 채소들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더 많이 먹게 할 수있을까하는 연구가 있다. 답은 ‘학생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두라’는 것이다. 잘 먹지 않는 음식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둘 때와 눈에 잘 띄는 곳에 둘 때 소비되는 양의 차이는 현격했다. 그래서 학교뿐만 아니라, 정부나 공공부문에서는 바람직한 정책을 시도할 때 이러한 넛지 효과를 이용하면 국민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정책입안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끌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킬 때도 넛지효과를 이용할 수 있다. 자녀가 어렸을 때 부터 매일 머리맡에 책들을 놓아두고, 부모가 아이들과 자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책을 빌리고 하는 활동을 생활화하면 나중에 자녀들이 책을 가까이 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이 책에 예를든 이야기 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야기는 바로 네델란드의 암스텔담 공항에 있는 남자 화장실이야기다. 암스텔담 공항에서는 이 넛지효과를 이용해서 남자 소변기밖으로 튀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였단다. 이 공항에서는 ‘화장실을 청결하게’와 같은 훈계조의 캠페인 구호를 붙이지 않고도 이런 일을 해냈는데, 소변기마다 중앙 부분에 파리 한 마리씩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랬더니 소변기 중앙에 그려놓은 파리를 맞추려고 남성들이 변기를 정조준하는 바람에 밖으로 소변이 새나가지 않고 대부분 소변기 안으로 들어 오더라는 것이다. 요즘 서울의 대형 백화점이나 극장에 있는 남자화장실에 가면 남자소변기통 안에 큼직막한  파리 한마리씩 그려진 것을 쉽게 볼 수있다. 바로 ‘넛지’를 실생활에 이용한 사례다. 남자들은 그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조준’을 한다.

시카고 다운타운에 가면 미시간 호를 끼고 달리는 Lake Shore Drive가 있다. 그런데 어떤 구간에서는 커브가 심해서 감속을 유도하는 표지판들이 붙어있었는데, 빨리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 감속 표지판을 계속 무시해서 사고가 빈발했다고 한다. 이에 시카고 시는 몇년전에 차도아래 바닥에 흰색 선을 가로로 그어놓았는데, 커브 구간이 가까워 지면 질수록 이 흰색 선을 점점 촘촘하게 그려놓아서 운전자가 같은 속도로 운전을 하더라도 마치 자신이 상당히 빨리 운전하는 것처럼 느끼게끔 해 놓았다. 이렇게 한 뒤에 그 구간을 지나는 차들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