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최후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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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시카고>

 

최후통첩 게임이란 서로 알지 못하는 두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을 나눠 가질 선택권을 주는 게임이다. 실험자는 먼저 A에게 20불을 준다. 그리고 A에게 선택권을 준다. A는 자기 마음대로 B 에게 나누어 줄 금액을 정한다. A 는20불을 전부 B에게 줄 수도 있고, 한푼도 안줄 수있다. 하지만 만일 B가 A의 제안을 거절하면 A와 B는 한푼도 가질수없다. A는 다시 실험자에게 20불을 돌려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보면 B는 1센트라도 받는 것이 한푼도 안받는 것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서 대부분의 B는 A가 3달러보다 적은 금액을 제시하면 A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이 제안을 거절함으로써A 에게 분노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A역시 한푼도 못받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서A  가 평균적으로 B에게 제시한 금액은 6불이었다. 이것이 최후통첩 게임이다.

독재자 게임은 최후통첩 게임을 살짝 비튼 것이다. 최후통첩 게임은 A와 B, 둘다 의사결정권한이 있었다. 반면에 독재자 게임은 오직 A에게만 선택권이 있다. 실험자는 A에게 20불을 주고 두가지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A는 자신이 받은 20불을 B와 반씩 나누던지, A자신이 18불을 가지고B에게는 2불만 줄수가 있다. 선택권은 A에게만 있다. A가 한번 선택한 것에 대해서 B 는 반발하거나 복수할 수가 없다. 재미있게도 선택권을 가진 A중에75퍼센트, 즉 네명중에 세명이 B와 반씩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 실험을 보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타적이며 남을 배려한다고 해석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영국의 한 대학의 심리학 교수가 학과 사무실의 커피 자판기 옆에서 이런 실험을 한다. 관례상 커피를 한잔씩 마신 사람들은 ‘정직 상자’에 각자 커피값을 지불했다. 그런데 정직상자 앞에 꽃그림을 붙였을 때 보다 사람의 눈 사진을 붙였을 때, 세배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구걸하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는 길을 건너가지만, 그들에게 돈을 주기위해 일부러 길을 건너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 것은 약자가 불쌍하다고 느끼기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보기때문에, 또는 죄책감때문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졌던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  존 리스트는 독재자 게임을 살짝 비틀어서 다음의 네가지 실험을 한다.

그가 한 첫번째 실험은 전통적인 독재자 게임과 같다. A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B에게 얼마를 나누어 줄 지 묻는다. 실험 참가자중 약 70퍼센트가 B에게 돈을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그들이 나누어 준 금액은 자신들이 받은 액수의 25퍼센트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전통적인 독재자 게임과 같다. 하지만 그의 두번째 실험은 조금 달랐다. A에게 먼저 돈을 주고 B에게 나누어 줄 수있도록 한 것까지는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A가 B에게 1달러를 뺏어올 수도 있는 권한을 준다. 이런 선택권을 주자, A들은 달라졌다. 이 경우에 B에게 돈을 나누어 주겠다고 답한 A는 35퍼센트 뿐이었다. 첫번째 경우의 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45퍼센트는 B에게 한푼도 주지않았다. 나머지 20 퍼센트는 오히려 B에게 1달러를 뺏어왔다.

그의 세번째 실험은 A와 B에게 같은 돈을 나눠주고, 이 사실을 A에게 알렸다. 이번에 A는 자기 돈을 나눌 수도 있고, B가 받은 돈을 전부 뺏어 올 수도있다. 이 경우, A중에 자기 돈을 B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사람은 오직 10퍼센트였다. 60퍼센트는 B가 가진 돈을 뺏어 오겠다고 답한다. 게다가 전체의 40퍼센트 이상이  B 가 받은 돈의 전부를 뺏어 오겠다고 답한다. 그토록 관대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빠진 것이다. 마지막 네번째 실험은 사람들에게 간단한 노동을 시키고 돈을 나누어 주었다.  A는 B가 자신과 같은 양의 돈을 받은 것을 알지만, 그것이 노동의 댓가로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 A의 3분의 2는 B 의 돈을 뺏지도, 자신의 돈을 주지도 않았다. B에게 돈을 뺏은 사람은 전체의 28퍼센트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민낯이 드러나자 리스트 교수를 미워하게 된다. 기부를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뺏을 수있다면 뺏는 것도 사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뺏는 사람은 그나마 적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