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 읽기] 왜 나만 손해를 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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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 대표

 

참 사이 좋은 두분이었다. 게다가 두분 모두 성품이 아주 훌륭한 분들이었다. 두분이 동업을 하시겠다고 함께 찾아오셨다. 사실 두분은 자신들이 동업을 하는데 문서따위는 불 필요하지만,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서” 문서를 만들어 두겠다고 하셨다. 말렸다. 하지만 두분의 의지는 강했다. 서로 믿음과 양보를 전제로 한, 두분의 관계는 나같은 사람이 쉽사리 고정관념을 가지고 판단해버릴 그런 사이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몇년 후, 두분은 사업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 충돌로 결국은 헤어지게 된다.

요즘도 많은 분들이 동업을 하겠다고 필자를 찾아 온다. 동업은 절대 하지 말라고 말린다. 사실 말리면 나에게는 손해다. 사람들이 자꾸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또 실패하고 다시 시작해야 나같은 사람이 돈을 번다. 하지만 동업으로 물질적인 손해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도 잃고, 게다가 커다란 정신적인 상처까지 안게 된 사람들을 많이 본 필자는 동업을 말린다.

동업이 깨지는 이유를 고민해 봤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는 것같다. 그런데 이렇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은 꼭 개인간의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부터 줄곧 한미 FTA때문에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한미 FTA는 폐기되거나, 재협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FTA는 2012년부터 시작되었다. 기억하는가? 당시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한미FTA를 반대 했었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미국이 손해를 보고있다고 제발 그만하자고 우기는 것이다. 한미 FTA가 시작되기 전인, 2011년 당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116억달러였다. 그랬던 것이 한미 FTA가 시작되고 3년 후인,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의 적자 폭은 258억달러가 되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손해가 두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앞서고 있는 서비스업이나 미국으로 부터 한국이 구매한 무기 구입등은 제외한 수치다. 미국이 강한 서비스업 수지와 한국의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수입을 포함하면 미국의 대 한국 무역수지 적자 폭은 50억불에서 60억불로 줄어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두사람이나 두나라 사이의 관계에서 유독 자기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은 왜 생기는 것일까?

여기 간단한 실험 하나를 가지고 그 이유를 조금 이해해 보자. 사람들에게 20불씩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게임을 제안한다. 홀짝 게임을 해서 당신이 이기면 30불을 추가로 더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당신이 틀리면 처음에 받은 20불을 뺏긴다. 20불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냥 처음에 받은 20불을 가지고 떠난다. 사람들은 추가로 30불을 얻는 것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20불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손실기피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이 게임을 하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먼저 사람들에게 50불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나서 이 돈은 다 당신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나서 30불을 다시 돌려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홀짝게임을 제안한다. 홀짝게임을 해서 당신이 이기면 당신이 뺏긴 30불을 다시 찾을 수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지면,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20불까지 추가로 뺏기게 된다. 만일에 이 게임 자체를 하지 않으면 손에 쥐고 있는 20불을 가지고 그냥 이 자리를 떠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뜻 홀짝게임을 하겠다고 덤벼든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잠깐이라도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린 30불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이 게임은 사람들이 똑같은 금액이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대해 훨씬 더 크게 느낀다는 사실을 잘 알려 준다. 두사람이 동업할 때 조금이라도 이익을 본 사람이 느끼는 안도감보다 손해본 사람이 느끼는 상실감이 훨씬 더 큰 것도 같은 이유다.

직원들이나 자녀들에게 섣부른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무엇인가를 주겠다고 누군가에게 약속을 한 순간, 그 약속을 들은 사람은 이미 약속한 무엇인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훗날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되면, 약속의 희생자는 자신의 것을 오히려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