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가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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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삼(전 주립병원 정신과의사/시카고)

동지(Winter solstice)가 두 주 조금 지났다. 맥도 못추는 겨울 태양은 정오가 조금 지나자, 벌써 서남쪽 중천 아래쪽으로 빠르게 기우는 눈치다. 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오늘은 라인댄스 크래스 동료들과 점심야합(lunch gathering)을 한다고 한다. 연세도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근처 한국음식점을 시끌법석 통채로 점령하리라. 잘 손질된 이중 유리창 문을 통하여 문득 제 철에 어울리지 않는 따스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겨울, 어쩌자고 나른해지는 묘한 분위기 속으로 제동없이 빠져 들기로 한다. 겨울철 층층으로 곡예처럼 쌓아올린 중고등학교 조개탄 난로가 뜨겁게 데워주던 나의 점심 도시락. 1950년대 중반 가난한 세월을 살던 젊은 청소년들의 왕성한 식욕위에 사정없이 군림하던 멸치볶음 김치찌개, 밥냄새. 나른한 오후수업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말코 폴로를 좇아 실크 로드(Silk road),천산남북로를 염탐하기로 한다. 힌두쿠시( Hindu Kush), 카이버령(Khyber pass),곤륜산맥, 고비사막의 가장자리 돈황, 한무제가 흉노족을 징벌한 뒤 서역지방을 도모하기로 한 거점으로 시작하는 오아시스 도시.          

1254년 이태리의 상업도시 국가 쯤으로 시작되는 베니스 공화국에서 태어난 말코 폴로는, 1271년 17세 사춘기 소년의 신분으로 장장 7,500마일  머나먼 길을 여행하여 쿠빌라이 칸( 홀필렬)의 궁궐이 있는 원나라(Yuan dynasty)에 도착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17년을 지낸 말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의 개인적 배려를 받으며 한때 높은 몽골관직의 벼슬길도 지냈다 한다. 비자, 매스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CHARGE 카드는 커녕 그리도 흔한 라마다 인, 할라데인 따위의 잠자리나 대강 요기를 해결할 수단이 전무한 낯설은 이국땅 가시덤불길을 헤치고 다닌 젊은 청년의 불가사의한 동방탐문 의지의 정체는 무었이였을까? 짐짓 그럴듯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늘 애매모호하기 짝이없는 발성을 서슴치않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악인들처럼, ” 산이 거기에 있기에(because it is there…)” 무슨 수를 써봐도 탐탁해 보이지 않는다. 말코 폴로의 부친과 숙부는 이미 몽골이 세운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을 방문하고 베니스와 교역협정을 맺은 뒤, 원나라를 떠날 때 황제가 교황에게 보내는 친서 까지도 지참하고 있었다 전해진다.  얼마후 로마 교황청은 폴로형제에게 원나라로 다시 돌아가 몽골황제에게 친서를 전달할 것을 청한다. 이때 17세 소년 말코 폴로는 아버지와 숙부의 여정에 참가하게 된다. 폴로는 중국을 방문한 초기 유럽인은 아니었다. 그는 이전의 어느 유럽인보다 더 멀리 극동지역을 방문한 뒤, 이태리 귀향 후 우여곡절 끝에 ‘동방견문록’이라는 여행기를 남긴 것이다. 동방견문록은 중세유럽 암흑기 후반의 베스트 쎌러이자 세계를 바꾸어 놓은 책자인 것이다. 폴로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들의 영원 속 청춘시대를 살고있는 꿈길의 여행기인 것이다.

1966년 사학자Frances Woods는 ‘말코 폴로는 실제로 중국을 방문하였을까?’ 흥미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만리장성의 존재, 한자 표기법, 중국인들의 젓가락 사용, 중국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여인들의 편족(foot-binding)에 관한 기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원나라 궁궐 사록에도 말코 폴로의 이름이나 존재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Frances Woods는 말코 폴로가 페르시아까지 여행을 하였을 것이며, 중국을 방문했던 페르시아 여행가들로 부터 얻은 중국에 관한 물정과 소식에 근거하여 그의 ‘동방견문록’을 저술했으리라 믿고있다.

한국에서는 ‘태극기 진영’과 반대하는 ‘촛불세력’이 SNS를 이용하여 서로를 비방하는 가짜뉴스(fake news)를 남발하고 있다 한다. 정확한 사정을 알 길이 없는 국민들은 어느 누구의 뉴스가 옳은지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 민주주의의 바탕이 굳건하고 시민의식이 고르게 흐르고 있는 미국은 가짜뉴스(fake news)와 대안사실(alternative fact)이 들먹거려도 크게 걱정스럽지 않은 것이다. 한치의 왜곡도 허용치 아니하고 ‘헛소리’를 사실대로 지적하는 원로 언론인들과 사회생활의 흐름을 바로 알고자 하는 국민의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도저도 거의 존재하지 않은 풍토 위에서 ‘빨리 빨리’와 감정의 ‘소용돌이’가 쉽게 이성을 목조르는 불행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