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눈물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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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홍 장로(장로선교회 회장)

 

낙선한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를 기다리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도 재기를 꿈꾸며 삶이 평탄치 못한 이들도 내일의 소망을 바라며 살아간다. 메시야를 기다렸던 사람 가운데 시므온과 안나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오래된 얘기다. 한국의 어느 시골 교회에 부흥사가 부임해 갔는데 새로 부임한 목사를 위해 능력 달라고 기도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여전도 회원들이 기도 하면서 얼마나 울고 별나게(?) 기도 했던지 돌아가고 난뒤에 무슨 법석을 떨며 기도 했는지 목사님이 가보고 싶어 그자리에 나아 가다가 미끄러져 내동댕이를 치고 말았다고 한다. 벌떡 일어나 촛불을 켜고 보니 아뿔사! 마루가 온통 얼음판 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신도들의 흘린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사님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가 죽일놈입니다. 이 추운 겨울밤 날 위해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한 저들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무슨 저런 괴성(?)을 지르며 기도하냐고 욕만 했으니 용서하여 주옵서라고 회개의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교회가 자리가 잡히고 타교회에서 부흥회 요청이 쇄도 하더라는 것이다. 성도는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 한국 교회 성도들은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교회를 기분따라 자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부흥은 심령의 부흥이 먼저 일어나야 부수적인것도 따라 오는 것인데 현실에 대해 부정적이고 하나되지 못하면 그 단체, 기관, 교회는 파멸하고 만다. 부족하지만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만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어렵고 목회자가 부족하면 그 부분을 위해 성도들은 기도해야되고 목회자는 부족한 점을 열심으로 연구하여 보완해야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싫고 얄미운 성도들이 있어도 그들을 위해 품고 기도해야 한다. 아무런 노력도 열심도 열정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다리면 은혜가 임하겠는가? 우리 시카고 교계는 어떤가? 무조건 은혜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은혜로 덮고 가자는 교회는 없는가? 잘못된 것을 은혜로 덮자는 분은 은혜롭게 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가? 잘못을 가르치고 깨닫고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는 것이 은혜가 아닌가? 말씀과 하나님의 정의가 없고 원칙에서 벗어나고 바로가지 않으면 다수의 의견 일지라도 옳은게 아니고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말을 왜곡 시키지 말자. 오늘날  한국 교회는 내가 목사니 장로니 하는 권위 의식에 가로 막혀 자기의 생각만 옳은것 인줄 알지 자기의 생각에 배치되면 부정적이라고 미워하고 파당을 지어 목사파 장로파로 나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찢어 놓고 있지는 않는가? 무엇보다도 교회 리더들의 정신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목회와 신앙 생활은 인정에 매달려 하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교회가 바로 서야 세상도 바로 서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기전에 사람이 먼저 되라는 말이 있다. 논쟁이 생기면 윤리 도덕도 없이 막무가내로 행동해도 목회자에게 유리한 사람이면 믿음의(?) 사람이 되는게 요즘 시대의 교회 현실이 아닌가?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따를지라도 임직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임직받은 교회를 쉽게 떠나서는 안된다. 성도들 또한 기분대로 쉽게 교회를 옮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 시카고 교계가 서로 탓하기 전에 서로를 위해 교회의 약한 부분을 위해  콧물 눈물 흘리며 목회자와 모든 평신도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 본적이 있는가? 오늘날 한국 교회 특히, 이민교회는 눈물을 잃어 버렸다. 서로를 탓하고 교회를 두동강이(?) 내기전에 목사와 성도와 교회를 위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기도하는게 순서가 아닌가? 하나님이 침묵 하신다고 보이지 않으신다고 예수를 배신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되지 않는가? 눈물을 보시는 아버여! 필자를 비롯해 시카고 교계에 진정한  눈물을 주옵소서. 시편기자는 말한다”여호와께서는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시1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