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때로 역행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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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숙녀(수필가/시카고)

나는 알고 있다. 시카고의 봄은 반드시 4월 초순 즈음하여 눈이 오거나 심한 바람이 불거나 한바탕 자연의 랑데뷰가 있어야 봄다운 봄이 온다는 것 말이다. 오늘은 4월14일. 번듯한 4월의 중순이다. 일찍 오려다 길이 막혔을까? 여느 해보다 일주일쯤 늦었다. 때 아닌 눈이다. 뚝뚝 자유스럽게 손으로 떼어 날려 보낸 무명 털 같다. 부드럽고 정겨운 솜털 같은 봄눈을 하염없이 지켜본다. 봄이 겨울로 역행하는 것일까?

 때로 역행은 직행보다 묘미가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분노하며 떠났다가 역행하여 돌아와 다시 만난 사랑은 더욱 뜨겁다. 방랑만이 자기의 길이라 여겼던 선비가 본향의 그리움에 돌아오는 경우, 전진만이 생명이라 지시한 장군의 명에 따라 진군하다 역행하는 지혜로 승리한  전쟁, 때로 역행은 아름다울 수 있다.

 어린 소녀의 젖꼭지처럼 조심스럽게 싹이 트던 진달래 꼬트리도 눈옷을 입는다. 찬 눈에 놀라서 눈을 끔벅거리다가 다시 피어나리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음속 활시위를 당겨 깨끗한 은회색 하늘의 중심부를 향하여 쏜다면, 그 은회색 장막이 찢어지면서 속에 있는 별들의 종알거림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영결식을 올린 그분은 그 별무리 속에 합류하셨을까. 기존의 별 밭을 지키고 있는 먼저 간 영혼들이 환영해 주었겠지. 수십 년을 함께한 가족을 보내는 슬픔의 무게는 이 삶에서 사랑하던 무게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노염 같은 집착일까? 솜털 같다가, 흰 나비 같다가, 먼지 같다가, 실비 같기도 하고 하얀 눈이 다양한 모양으로 춤을 춘다. 색은 오직 한 가지 희고 흰색이다. 뚜벅뚜벅 그냥 떠나가기가 아쉬웠나보다. 지금 저 눈 속에 봄은 더욱 단호하게 영글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가 기척도 없이 사라지는 꽃송이, 바로 그 모습이다. 역설의 모순, 기억들이 걸어 나와 길 떠나다가 뒤돌아보는 순간이겠지.

매운바람 아래서 교요해지는 일, 바로 아름다운 봄눈이다. 백 번 떠났다 천 번 다시 온다는 밀물처럼 또 한 번 더 만나보고 떠나자는 봄눈의 속마음을 읽는다. 보내는 고통을 이겨내는 계절의 끝자락, 구석구석 이미 봄이 찾아든 자리에 겨울 같이 차디찬 눈이 다시 찾아와서  봄눈 같지 않게 정색을 하고 푸짐하게 잔치를 벌인다. 봄의 전갈을 하얀 눈으로 설명하는 시카고 날씨가 보듬은 은유 !

눈에 대한 정이 증폭되어 돌아오는 극진함, 봄눈의 호흡을 함께하는 느낌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나는 오늘 봄의 아름다운 결을 혼자 담당하여 겨울 같은 봄을 한 없이 즐겼다. 봄바람은 부드럽다는데 눈 위의 바람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그러나 계절이 주는 어떤 색다른 자유 함을 누리는 맛은 일품이었다. 봄을 향하여 가는 듯하더니 반전하여 꾸며준 하얀 눈세계의 뜻을 그대는 아는가?

내 등에 업힌 봄눈은 참으로 지고지순했다. 이야기꾼이었고 매력이었으며 친근했으며 달콤하기까지 했다. 켜켜이 덮어주는 웃음 같은 계절의 봄을 뒤집어쓰고 여섯 살짜리 같이 즐거웠다. 늙을 줄 모르는 봄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만난 눈, 겨울로 역행하는 듯 하지만 자연은 인간보다 현명하다. 더 온전한 봄을 위하여 베푼 마지막 눈의 축제이거니 곱게 유유히 녹아주소서. 자랑스러운 시카고의 봄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