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부활(復活)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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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선 목사(시카고)

 

사월은 부활의 계절이다. 만물은 봄을 맞아 되살아나고 새순과 잎이 돋아 푸름은 짙어지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계절의 신비를 더해 준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사순절(四旬節)의 고난행군이 끝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시었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 부활의 향기가 만발하는 신비의 달이요,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영적 승리의 계절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만물이 소생하는 자연의 현상과 영적 부활을 혼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들은 역사를 자기생각대로 끌고 가려 하나, 성서에서 역사를 보는 지혜자의 글에서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도서 1:4~10)”고 말씀한 뜻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역사를 자아중심으로 보지 않고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경계하기를 비 신앙적 변론에 빠지게 하는 신화(神話)와 끝없는 족보(族譜)에 착념치 말것(딤전1:4)을 교훈했다.

우리는 결코 가문과 자신의 업적을 과대포장하려고 족보를 미화하는 희곡(喜曲)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 국내외 정세는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데, 정치인들은 실리 추구의 속성이 한편으로만 기울어져 불균형을 이루고 있고, 종교인들마저 부활의 진리를 외면한 채 세속적 방법을 쫓아가려하고 있어 걱정이 된다.

안으로는 ‘Me Too운동’의 늪에 빠져있고, 위정자들은 나라도, 민심도 동강나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이 바라는 등식(等式)에 상수(常數)를 집어넣으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지 않는가? 깊이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 속에는 두 종류의 부활의 사건들이 있다. 구약에서 엘리야 때 사렙 땅 과부의 아들이나, 신약시대 나인 성(城)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 등은 죄인으로 태어나 살다가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는 신비를 체험 한 사건이고, 예수님의 경우는 원죄가 없이 성령으로 태어나셨다가 십자가에 달려 못 박혀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죄에서 태어났다가 죽은 후 다시 살아 부활한 자들은 “부활의 기적”을 체험한 자일뿐, 결코 죄 없는 의인으로 영원한 부활에 동참한 것이 아니요, 더욱 죄와 사망을 이기고 승리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원죄가 없으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 하셨기에 여기에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4월을 부활의 계절이라고 한 표현은 봄을 예찬하는 말로, 엄격히 말한다면 봄에 새싹이 나고 잎이 피는 현상은 완전히 죽었던 식물이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부활의 현상이 아니라, 다만 죽은 것처럼 보였던 식물이 봄이 되어 남아있던 그 생명력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자연현상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한 참된 부활과 생명 안에서 ‘우리 민족의 소망’도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다.(mymilal@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