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진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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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시카고신학대 교수)

 

왜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렸을까? 오래전 뜬금없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의 화질이 좋지 않았고, 인터넷으로 쉽게 공유할 수도 없었던 시대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답을 스마트폰 시대에 찾았다. 핸드폰은 소통의 도구이고, 말만큼이나 이미지로 소통하길 원하는 시대를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이미지는 언제나 인간의 소통수단이었다. 동굴의 벽화에서 종교의 아이콘까지 이미지는 초월을 향한 인간의 의지까지도 담아내는 소통의 상징이었다. 현대 스마트폰은 이미지 문화를 보편적인 일상의 일부로 만들었다. 최근 인터넷 앱을 통해 공유되는 사진의 숫자가 화제다. 매일 페이스북에 올려지는 사진만 해도 3백 5십만 장이 넘는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순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사람들과 주고받는 것을 최근에 흔히 보게 된다. 저렴한 스마트폰에도 고성능의 카메라가 달려있고, 누구나 쉽게 초점과 노출이 완벽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언뜻 생각하기 힘든 사진의 기능이 하나 있다. 바로 사진을 통한 성찰과 영성의 실천이다. 사진을 찍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카메라를 드는 순간은 언제나 특별한 시간이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착, 기억과 추억의 감성이 교차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피사체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초점을 맞추고, 숨을 죽여 몰입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경건한 시간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사진을 찍는 건 세상의 빛을 뷰파인더라는 질서 속으로 인도해 그 그림자를 남기는 행위다. 카메라는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말이 있다. 카메라는 세상을 새롭고도 의미 있게 보게 만들고, 그 앞에서 멈추고 또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을 찍은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행위다. 이렇게 우리가 사진을 접하는 자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신앙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세상에서 은혜와 감동의 순간을 찾고, 그 순간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감사하는 자세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20세기 미국의 영적인 스승이었다. 그는 켄터키 주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무소유와 침묵을 실천하는 삶을 살면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는 글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영성가가 되었다. 머튼은 말년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깊은 영성이 있음을 깨달았던 그는 1968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대여 받은 카메라를 이용해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의 사진에서 숙달된 전문가의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카메라를 들고 수도원 주변을 다니면 명상과 성찰의 순간들을 찾았고, 사진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영성이 있다고 믿었다. 사진과 영성이라는 주제를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머튼의 사진을 통해서였다.

스마트폰 시대에 사진을 찍는 것은 특별하지 않고 생각도 기술도 요구하지 않는 유희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카메라는 세상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그 앞에서 고백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만든다. 사진을 영성의 도구로 이용하고, 믿음을 실천하는 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신앙인들이 늘고 있다. 사진을 통해 세상의 빛과 아름다움, 감동과 은혜를 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값비싼 카메라나 필름을 따로 구입할 필요도 없고, 일상을 크게 벗어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찍은 사진의 세상을 다시 보면서 나누는 대화는 고백과 성찰의 대화가 되기도 한다. 나만의 시선이 머물렀던 세상을 기록한 사진은 나의 고백일 수밖에 없다. 사진을 통한 치유와 인문학의 실천이 가능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