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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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선 목사 

성서에서 감사절의 유래는 출애굽기(23:16)의 맥추절에서 근원하고 있으나, 미국에서 근대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1620년에 북미 대륙에 건너 온 청교도들이 농사를 지어 그 다음해의 거둔 첫 추수 감사제에서 시작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미국에서는 11월은 추수감사의 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농부만이 감사하는 축제일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타락한 후 에덴에서 추방된 후 아담의 유일한 생존방법은 농업 이었겠으나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기에 청교도들이 첫 수확을 한 후 하나님께 드렸던 “Thanksgiving”은 보다 폭넓은 ‘삶의 감사’로 확대해야 마땅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첫째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에서도 청교도들의 신앙의 자유에 대한 감사를 배제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를 종교의 유. 무에 대한 선택의 자유로 착각하고 있으나, 그 바탕에는 더 잘 믿으려는 신앙의 자유, 즉 교파의 자유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들 그리스찬의 감사에는 삶에 대한 감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감사란 다른 말로 포현한다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이 육신을 입고 태어난 이상 일용할 양식은 필요불가결의 요소이기에 주님께서도 당신의 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 라고 생존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가르쳐주셨다.

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농부가 땀 흘려 농사를 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땀 흘리는 수고를 통하여 삶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우리들의 감사에는 하나님의 크신 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씨 뿌리는 비유에서 뿌린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태 13:8) 고 하셨다. 이는 엄청난 기적이요 복이다. 감사란 하나님이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영적 은혜의 순환이라고 하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때를 쓰면서도 감사하는 일에는 인색하다. 필자가 아는 어떤 분은 말하기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는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살아 있다는 생존 자체가 감사할 이유가 아닐까? 지구상에는 하루사이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고 죽어 가는가? 그런데도 자신의 생존에 대해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 속에 은혜의 순환이 막혀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바울은 그의 체험신앙을 고린도 교회에 간증하기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 고 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야 말로 복의 순환의 큰길임을 믿고 한해를 통한 ‘삶의 감사’를 청교도들처럼 드리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