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영복과 촛불의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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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시카고신학대 교수)

 

함석헌은 1989년 세상을 떠났고, 그보다 1년 앞선 1988년 신영복은 20년 감옥생활을 뒤로 하고 세상에 나왔다. 20세기 후반 한국 사상사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기로 나는 이 때를 기억한다. 학문적인 기질과 방법이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이들을 한국의 사상가로 이어주는 연결점은 많았다. 예술적 감수성, 동양사상의 탐구, 민중이나 변방과 같은 주제로 출발하는 사유의 체계, 저항정신과 타협하지 않는 양심과 진실의 추구 등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함석헌의 씨알 사상과 신영복이 애착을 가졌던 늦가을 나뭇가지에 하나 남겨둔 ‘씨 과일’을 뜻하는 ‘석과불식’이란 개념은 두 사상가를 함께 생각할 구체적인 근거가 된다. 함석헌 이후 신영복은 한국인들의 귀감이 되고 양심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식인 역할을 했다.

2년 전 추운 겨울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던 모습은 그의 삶과 생각을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에게도 약간의 충격이었다. 이 시대가 어른이 불필요하고 개인의 가치만 극대화된 시대가 아님은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그때 한 가지 뜬금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왜 미국엔 신영복 같은 사람이 없을까? 20세기에 사망한 미국의 많은 인물들을 떠올렸지만, 사망 후 한 시대의 정신을 이끈 사상가라 칭송받은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근접한 사람이 있다면 1963년 타계한 대표적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한국 역사의 고난과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분단의 아픔과 아직도 남아 있는 지식과 배움에 대한 욕구나 지행일치를 실천하는 지식인에 대한 유교적인 향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받았던 감동과 충격은 지금도 새롭다. 감옥이라는 한계 상황에 처한 지식인에 대한 연민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책에서 내가 읽은 인간에 대한 이해, 관계성의 가치, 그리고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은 감동 이상의 깨우침으로 남아 있다. ‘더불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신영복을 연상하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는 그만의 개념이 되었고, 한국인의 ‘성찰’은 이제 그의 삶과 글에서 하나의 기준을 찾게 되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과학도로 출발했지만, 그는 독특한 글씨체까지 남긴 서화 작가였다. 예술과 학문이 함께 했던 고전의 경지를 스스로 터득했고, 인문학의 가치를 자신의 삶과 학문을 통해 구현해냈다. 그의 사상을 애절한 동화의 한 장면으로 남긴 ‘청구회 추억’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의 추억이 되었다.

여러해 전 신영복 선생이 가르치던 대학에서 안식학기를 보낸 적이 있다. 그와 대화도 나누고 그의 수업도 참관하는 짧은 인연을 맺었다. 그때 그의 강의에서 공부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만, 가슴에서 발까지 가야만 완성되는 여행이란 그의 말을 직접 듣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미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그런 기회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실천하지 못했다.

1월 15일이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된다. 그 사이 한국 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다. 바로 촛불집회라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가 떠난 후 이제 누가 한국사회에서 신영복의 역할을 할 것인지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질문에 대해 답을 나는 촛불이라는 집단지성에서 찾았다. 촛불이라는 지성에서 함석헌의 깨어 있는 민중과 신영복의 더불어 숲이 된 사람들을 본 것이다. 촛불의 정신이 한국 사회를 지켜갈 지성으로 남을지 아니면 현대사의 한 사건으로만 기록될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겨울 촛불의 집회가 지성의 현장이었고, 손으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함석헌과 신영복의 후예들이었단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