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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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시카고신학대 교수)

 

오랜만에 노엄 촘스키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한때 거의 정기적으로 촘스키의 최근 글들이 모아져 있는 사이트를 찾던 시절도 있었다. 촘스키는 뛰어난 언어학자이지만, 일반인들에겐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불의한 미국의 대외 정책에 저항해 진실을 말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폭력적인 세상을 억압받는 약자의 편에서 상식의 논리로 분석하고, 암울할 현실 속에서도 연대와 저항이 가능하단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해왔다. 최근에는 90을 바라보는 연로한 나이에 예전만큼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알고 싶어 했던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의 대사관도 옮기겠다는 트럼프의 결정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이 필요했던 이유는 예루살렘과 관련한 트럼프의 믿기 힘든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감당하기 힘든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상식을 기대할 수 없는 미국의 대통령이지만, 이 결정은 몰지각과 비이성을 넘어 평화를 포기하고 전쟁이 일어나라 고사를 지내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팔레스타인에서 이를 두고 ‘지옥문’이 열렸다는 분노와 탄식의 반응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세상이 반대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용을 더 떨어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난과 좌절을 가중시키는 트럼프의 결정은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국내용일 수밖에 없다. 바닥으로 떨어진 그의 권위와 지지율, ‘러시아 게이트,’ 언론의 지속적인 공격 등에 맛서 상황의 반전을 꽤하는 행보라는 것이다.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결정을 환영하는 세력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뿐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갖는 유대교 내부의 상징성 때문에 이미 오래 전 예루살렘이 영원한 수도란 선언을 했지만,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왜 이 결정을 지지할까?

그동안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지지를 해 온 배경에는 유대인들의 영향력도 있지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이스라엘 사랑도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의 이스라엘 사랑은 유대인들과는 상관이 없고, 다만 성경의 예언이 빨리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 예언의 뿌리는 묵시록이다. 예수의 재림을 소망하고, 그 재림은 아마겟돈이란 최후의 전쟁 이후에 온다는 믿음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고, 그 전쟁이 일어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은 온전히 이스라엘의 소유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종말의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성경의 예언이 완성됐음을 상징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재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그런 묵시록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5천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트럼프의 결정은 지난 대선 때 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준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보답하고, 이들의 지지를 다시 얻어내는데 목적이 있어 보인다.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트럼프의 결정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트럼프는 신이 부여한 사명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트럼프는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의 경고를 했었다. 그의 예루살렘 선언은 그 경고를 중동 지역에서 실천하는 행위로 보인다. 얼마나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이 있어야 그들의 정당한 권리가 회복되고, 그 지역에 정의와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지, 그 미래는 암울하게만 보인다. 또 묵시록의 신앙이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는 미국은 어떤 나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연말을 맞아 다시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