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위안부 운동 26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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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봉완 사학 박사

워싱톤 정신대 대책위원회 이사/고문

시카고 소녀상 건립 대책 위원회 회원

 

필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앞으로 두차례에 걸쳐 평론을 쓰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일반 독자의 인식을 높이고 싶은 생각에서다. 그 전에, 내 자신이 어떻게 이런 일, 일부에서 말하는 “지저분한 일, 창피한 일”에 관여하게 되었는지 전하고 싶어 몇줄 쓰기로 하니 독자의 배려를 구한다.

나는 이 문제에 관여한지 거의 26년이 되었다. 1992년 12월에, 워싱톤 정신대협회 (Washington Coalition for Comfort Women Issues, Inc.)가 이동우 여사의 주선으로, 그 분이 다니는 맥끄래인(McLean, VA) 한인교회 지하실에서 창립됐을 때 참가한 사람 중의 한명이다. 이 여사는 이 일에 몰두하기 위하여 세계은행을 조기 은퇴한 분이다. 그 분은 나의 경기여중 1년 선배이시고, 이화여대 출신이시며 4남매를 훌륭하게 기르신 분이다. 시작하였을 때,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서로 붙들고 운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에 참여하고 계속 그 운동에서 활동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 비참한 경험을 당한 사람들이 우리의 동족이며 같은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모였던 사람들의 나이가 몇살만 더 많았고, 가난한 농촌에 살았었다면, 우리 자신이 그들과 같은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에서였다. 그 여인들의 말못할 고생을 회고하면 애간장이 타도록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안부 일에 관여 하는 것이 절대로 “창피하고, 더러운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피스러운 사람들은 간혹한,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이지, 피해자이고 희생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1992년에 나는 메릴랜드대학(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에서 부학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2년후에 죠지타운대학으로 옮겨 한국학 특별교수로 임명됐다.  죠지 타운에 간지 1년도 채 못돼 준비하기 시작하여 2년후에 미국내 최초의 위안부문제 학술대회를 미국인 동료인 Margaret Stetz 박사(현재 델라웨어대 석좌교수)와 같이 1996년 9월 30일에 개최했다. 그 당시에는 위안부문제를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거의 다 였다. 진지 학자들은 두손 잡고 나를 말렸다. 이 문제는 학계에서 취급할 문제가 아니며, 만일 추진한다면, 나의 ‘커리어’ 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그러나 나와 동료는 뚫고 나갔다. 불의의 일을 아는 이상,  밝히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널리 알려 다시는 그런 극단의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봉투를 들고 다니며 모금을 하고 호소했다. 또, 기조 연설자로 일본 전 수상 미끼 다께오의 미망인이며 저명한 인도주의자인 미끼 무쓰꼬 여사를 초대했다. 만 83세의 귀부인을 1등석 일본항공으로 모셔야했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했다. 일본 수상의 부인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하지만 미끼 부인은 회의 개최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일본이 당연히 책임져야 하며 위안부 제도의 존재함을 공공히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회의를 재미 일본 대사관에서 금지시키려고 우리 학장을 방문하고 미끼 여사의 방문을 거절했다. 그 회의는 상상외로 성공했다. 350석의 강연실이 가득찼다. 전 위안부 할머니 한분이 증언하는 사이에는 우는 사람도 있었다. 미 연방정부 법무성은 이에 자극 받아 16인의 일본 전쟁 범죄자 명단을 한달 후인 12월 4일에 발표했는데, 그 중 3명이 위안부 일에 관여 했던 인물이었다.  이 회의는 뚝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한 셈이 됐다. 곧이어 미국 방방곡곡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학술회의와 학생들 주최의 모임이 열렸다. 워싱톤 소재 Holocaust Museum과 Philadelphia Free Museum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죠지타운대 회의 주최자인 동료와 나는, 여러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책을 편집하여 출판했다.  이것이 ‘Legacies of the Comfort Women of World War II’이다. 최초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영문 서적이다.(2001, M.E. Sharpe, Inc., Armonk, NY).

그 후에도 나는 계속 이일에 관심을 두어 2007년에 시카고에 이사 온 후에도 이 곳의 뜻있는 분들, 한인회 31대 회장단 여러분, 서정일 회장, 김종휘 부회장, 루시 백 소녀상 설립분과위원장 등과 협조해 왔다. 또, 여러 학회와 대학에서 초청받아 강연해왔다. 2014년 봄에는 펜실베니아대학에서, 그해 가을에는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연설했다. 두 곳에서 100명 가까운 다양한 청중이 들어주었다. 금년이 워싱톤 정대협 창설 25주년이 되는 해라 5군데에서 연사로서 초청 받았는데 그중 둘은 한국, 둘은 뉴욕, 하나는 워싱톤에서 열린다. 다음편에는 위안부의 어원과 기본적인 사실에 대하여 집필하려 한다. 독자 여러분의 애독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