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16)…너무 일찍 만나러 온 아기

1100

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행복한 꿈나라로 떠날 듯한 고요한 밤! 오늘 밤에도 응급상황이 없길 바라며 밤 12쯤 예배실 2인용 의자를 끌어다가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한참 꿈길을 걷는 새벽 1시 반쯤 응급실에서 Pager가 왔다. 응급실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자 환자가 응급실에 있습니다. 출산을 했는데 아기가 죽었습니다. 많이 슬퍼하고 있으니 와 주세요.” 자다가 멍한 상태로 놀랄 틈도 없이 응급실로 갔다. 병실에 30대 중반의 백인 여성이 울고 있었고, 약혼자라는 흑인 남자는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채플린임을 소개하고 유감의 마음을 전했다. 인사를 나눈 후 그들끼리 계속 이야기 나누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며, 물어보진 못했지만 종교가 없어 보였다. 이것 저것 궁금한 내용이 많았지만, 나의 알 권리나 궁금증 해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기를 잃고 슬퍼하는 그들의 현실이 더 중요해서 침묵하며 안타까운 눈길만을 보냈다. 별로 신앙적인 조언이나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나의 존재는 의식하지 못한 듯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며 약혼자는 계속해서 약혼녀를 위로해 주었다.

한참 후 간호사 두 명이 들어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죽은 태아를 보기를 원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이 보기를 원한다고 말하자 준비가 되는대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바퀴가 달린 카트 위에 정갈하게 깔린 이불 위에 태아가 눕혀 있었고, 손바닥 만한 이불이 작은 몸을 덮고 있었다. 머리에는 털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이불과 모자 색깔이 파란색인 것을 보니 남자 아기였나 보다. 몸이 작고 다 자라지 못한 갓 20주 정도 지난 듯한, 아직 사람의 겉 피부가 없고 속살만 있는 작은 프라스틱 인형처럼 보였다. 형언할 말을 잃었고 신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클까?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조금 되었지만, 그 심정이 어떤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생명! 무슨 사연이 있어서 온전히 자라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간호사가 산모에게 물었다 “아기를 안아 보시겠어요?” 산모는 “아니요.”라고 답했다. 간호사가 아기의 아빠에게 물어보니 “네. 안아보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가까이 데려가니 안지 않겠다고 했다. “무슨 상황이지? 왜 그럴까? 그들의 심정에 어떤 생각들이 스쳐갈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간호사가 다시 물었다. “조용히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하세요?” “네. 그러고 싶어요.” 간호사가 나간 후 나도 잠시 지켜보다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듯 하고 그들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병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부모가 아기를 안아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그렇게 작은 생명을 본 것이 처음이요, 죽은 태아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감동스러운 것은 병원에서 보여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다. 한국에서는 낙태나 유산된 태아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뉴스를 통해 안 좋은 소식을 접하곤 했는데, 이 병원에서 보여준 ‘생명 존중’과 ‘짧은 만남’과 ‘아쉬운 이별의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기를 위해 기도나 종교적인 의례 등 채플린으로 도울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안타까운 마음이 아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가슴 아팠을 부모에 마음에 비길 수가 있을까? 그 가슴앓이가 평생 가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너무 일찍 만나러 왔다가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떠나버린 아기. 도울 방법이 없어 침묵기도 외엔 한 일이 없네. 그런데! 그 기도가 답이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