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친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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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삼(전 주립병원 정신과의사/시카고)

 

연전에 잠시 남부 시골마을 의원으로 로쿰테난스(locum tenens)일을 한 적이 있다. 북미주 어느 소도시를 가든 없는 듯 숨어들어 앉은 중국(chinese) 음식점을 발견한 나는 신기한 기분으로 식당 문을 두드렸다. 찹슈이(chop suey) 비슷한 음식 접시를 시켜놓고 못 믿겠다는 듯이 음식점 내부 치장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다가온 초로의 동양남자 한 분이 입을 연다. “한국 분이시지요?!” 나의 놀라움은 컸다. J는 나의 훈련병학교 동기생으로, 젊은날 기쁨과 고초를 고스란히 함께 나눈 군대 전우였던 것이다.

미국병사와 결혼을 한 뒤 오빠네 식구들을 초청이민 한 여동생 미국식구 일가의 시골 소도시에 정착한지도 이십년이됐다했다. 달포 남짓 병원측에서 주선한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일과후 J 부부와 같이하는 저녁시간이 그토록 즐거웠다. 고생스러운 신병훈련소 생활의 연장과 다름없는 고달픈 전자통신학교 교육을 마쳐야하는 행군을 함께 한 친구다. 삼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뜻하지않게 남일리노이주 어느 시골마을 중국식당 매니져(manager)겸 써버(server)로 일하게 되는 J와 나는 거침없이 예전의 모습대로 서로를 맹목적으로 아끼는 친구사이로 돌아간다. 군대 동기 친구나 중고등학교 시절을함께 지낸 청소년 때 친구들과 만남은 언제 어디서나 맹열한 기쁨을 불러일으킨다.

민태원(1899~1935)의 ‘청춘예찬’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속에 든 칼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사실 그랬던가? 어처구니없는 정신적 고통으로 힘에 겨웠던 젊은 날들을 떠올려 본다. 시도때도없이 이성을 향한 갈팡질팡 솟구치던 젊은 시절의 육체적 욕망에 시달리다가는, 종내 자책(? )으로 마무리할 수밖엔 별도리가 없었던 무기력하게 초라했던 시절. 겹겹이 졸라매 나를 옥조이던 사회적 규범, 제 몸을 사르고서라도 세상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도저히 얼토당토않은 지침을 강요받던 시대. 돌이켜 보아도 민태원의 ‘청춘예찬 ‘은 방금 청춘의 좌표위에 선 젊은 이들의 자화상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한마디로 청춘은 인생시간표 중 험난하기 이를데없는 길목중의 하나인 것이다. 사춘기라는 어려운 계절을 함께 가졌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오래도록 가슴을 파고들기도 하는 정감있는 우정을 간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언제라도 쉽게 점화되어 더욱더 아름답게 진작되리라는 관찰은 설득력이 있다. 이민초기 낯설은 땅에서 고생스러운 생존 속을 함께 헤쳐 걸으며 생겨난 우정이 각별하게 오래도록 남는 경우를 흔히 발견한다.

J는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읍내에 깔금한 동양식품 소매점도 열게 되었다. 한 두어달 간격으로 대도시 도매상으로 부터 물건을 받으러 올 때마다 나를 찾는다. 여전히 정다운 친구 ! 나를 큰아버지라  부르는 J의 둘째 아들이 시골마을 목사님의 아름다운 금발 따님에게 장가들던 날, 축사를 끝내고 포디움(podium)을 내려오는 나는 J의 기쁨으로 가득한 울음섞인 찬사를 받는다.

“독터 한, 새끼, 네가 와줘서 너무 좋다야… J와 나의 우정은 꽃나무에 물도 주고 때때로 좋은 거름을 정성껏 뿌리듯 가꾸어온 듯 싶다. 어느덧 은퇴 이년차에 들어선 나는 우스개 소리로, ” 영화관이나 식당밖엔 오라는 데가 없다.” 흥얼거린다. 운이 좋은가?! 최근에 나이들어 사귄 몇몇 친구들과도 마음의 파장이 닮았는지, 맞아들어가는지, 야합을 할 때마다 서로를 멋있다고 생각한다. 고마운 일이다. 사랑이나 지성보다 더 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은 우정이다. 헤르만 헤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