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그리스도인들이 추석에 올려야 하는 제물

245

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시절은 수상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엊그제가 한가위였다. 조국에 사는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차례(茶禮) 문제로 해서 심적인 갈등을 겪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들은 차례 때 그 위에 올라갈 각종 음식을 밤새 준비하여 홍동백서(紅東白西), 생동숙서(生東熟西), 어동육서(魚東肉西) 등의 복잡한 원칙에 따라 논쟁을 벌여가며 제상을 정돈했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에서 어떤 제물이 어떤 방식으로 올라가기를 원하셨을까?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의 여러 곳에서 제사에 대한 규정을 나열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정작 마음을 두고 계신 것은 이런 복잡한 제례에 따른 예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벨의 양과 기름을 받으시고 가인의 농산물을 받지 않았다 해서 짐승의 피만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것은 오해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가인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의 제사가 열납되지 못했다고 쓰고 있다(히 11:4).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노획물을 취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했다는 사울 왕의 그럴듯한 핑계에 대한 사무엘의 대언(代言)은 엉뚱한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자기 욕심을 채우느라 교묘한 꼼수를 쓰며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던 지도자들이 제사를 드리겠다고 설칠 때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이 아니라 ‘정의’와 ‘인자’(仁慈)와 ‘하나님과의 겸손한 동행’이라고 역설했다(미 6:6-8). 이사야도 마찬가지였다. “분향(焚香)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伸寃)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3-17).

이런 경고에는 아모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희가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2-23).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서 생축의 제물을 놓고 탓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시 50:13). 대신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선언한다(시 50:23).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롬 12:1). 그와 함께 올라가야 했던 추석 제물들은? 아벨의 믿음, 사울이 가졌어야 했던 순종, 미가 선지자의 의(義)와 인(仁)과 신(信), 이사야, 아모스의 선행과 정의와 박애의 사랑, 시편 기자의 감사 등을 정성껏 준비하여 추석 때만이 아니라 매일, 매 주, 매 달, 잘 차려 올려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