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예수님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225

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혹자들이 종종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의 계명(마 22:37-40; 막 12:29-31) 자체는 예수님의 독창적인 새 가르침이 아니었다.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테스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께서 주신 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실제로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미 알고 있을 법한 가르침이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해 신명기 6:4-5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가장 핵심적인 훈도(訓導)였다. 이것을 마음에 새길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쉬지 말고’ 자녀에게 가르치며, 손목, 이마, 문설주 안팎에까지 써 붙이라고 했다(신 6:6-9). 절대로 잊지 말고 항상 염두에 두어 모든 행위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여기에 ‘쉐마’(‘들으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신명기 6:4의 첫 단어)라는 제목을 붙여 항상 암송하고 묵상했다. 쉐마를 모르면 유대인이라 할 수 없었다. 예수께서 이것을 첫째가 될 만한 계명으로 꼽았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 또한 구약의 레위기 19:18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는 율도(律道)로서 예수님 자신이 새로 창안해낸 가르침이 아니었다. 신약의 배경을 공부하는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당대의 여러 유대 문헌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이 구절을 모든 율법의 요약 또는 강령(綱領)으로 보고 있었다 한다. 예수님과 동시대의 큰 랍비였던 힐렐은 묘하게도 공자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의 개념으로 이 레위기 19:18 구절을 해설하여 모든 율법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았다. 소극적 의미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이웃 사랑으로 본 셈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예수님을 비롯해 바울(롬 13:8-10)과 야고보(약 2:8)는 모두 내 몸을 아끼고 보살피듯이 남을 사랑하여 돌보되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적극적 사랑 차원에서 이 말씀을 인용, 전 율법의 강령이 됨을 확인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특출하게 내어놓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옛 것이라 할 수 있는 구약성경의 근본정신에 투철했기 때문에 가장 독창적이고 영감에 넘치는 새 교훈을 베푸는 스승으로 인정받으셨다. 물론 다른 율법사들의 입을 통해 들으면 케케묵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쉐마’와 ‘이웃사랑’의 계명을 한데 묶어 소개하신 점은 독특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이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규정하고 뒤의 여섯 계명이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는 당연한 통합의 원리를 적용하신 결과였을 뿐이다.

옛 것에 대한 권위 있는 묵상으로 가장 참신한 것을 감동적으로 창조하시는 예수님의 멋진 지혜였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만 찾다가 무료하여 죽을 지경인 이 시대에 하나님의 고전(古典)이 가장 참신한 영감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은 작지 않은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