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33] 바람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꼭 바람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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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Latte is horse…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는지? 꼰대들의 옛날 자랑을 대표하는 말 ‘나 때는 말이야’를 영어로 옮겨 그 우스꽝스러움을 조롱하는 풍자다. 기성에 저항하는 젊음을 뜻하던 말 386이486이 되더니 결국 586을 넘어 이제 구시대의 꼰대를 뜻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내 아들보다 8일 먼저 태어난 한 젊은이가 한국 보수 정당의 대표가 되었다 하니 꼰대가 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나의 세월이 무상하다. ‘나 때’를 Latte로,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발음이 같다고 해서 horse로 옮겨 놓는 이런 말의 유희를 영어로 pun이라고 한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이런 pun으로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와 중생(重生)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니고데모에게는 구약에서 쉽게 찾아지지 않는 ‘거듭난다’는 개념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의아해 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는 육체적인 재 탄생이 아니라 영적인 신생(新生)을 뜻했다는 것을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이런 약간의 말 유희(pun)를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신약성경을 기록한 그리스어가 아닌 현대의 타 언어로 이 구절을 읽는 우리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왜 성령을 하필이면 바람에 비교했는지 모르고 대충 넘어가기 쉽다.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을 잘 새겨보면 성령의 역사에는 바람의 움직임과 유사한 바가 없지 않다. 바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그 바람이 힘을 지니고 있어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 방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고 손으로 잡아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람의 영혼에 바람처럼 불어와 변화를 일으키는 성령의 역사를 직유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람’의 개념이 사용된 것은 성령과 바람의 성격적 유사성뿐 아니라 발음의 동일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스어 원문에 들어가 살펴보면 현대 성경의 ‘바람’과 ‘성령’에 사용된 단어가 동일하게 ‘프뉴마’(πνεῦμα)라는 것을 놓칠 수 없다. 그렇다. 우리 말의 성령과 바람은 그리스어에서 똑 같은 단어 ‘프뉴마’다. 이 점은 히브리어 ‘루아흐’에서도 마찬가지다. ‘루아흐’는 바람이면서 동시에 영이다. 즉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본문을 읽으면, “프뉴마(루아흐)가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프뉴마’(루아흐)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가 된다. 물론 이 말을 듣는 당시 그리스어권 사람들은 문맥 읽기를 통해 전자는 ‘바람’이고 후자는 ‘성령’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구절을 대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개그맨의 말장난에 넋이 빠져 자기도 모르게 암기하고 흉내 내던 것처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어 그 내용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 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바람이 그렇듯이 말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 주변에서 엄연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바람은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 자기의 주권으로 자유롭게 운행한다. 우리는 바람을 가둘 수 없다. 바람이 우리를 스쳐갈 뿐이다. 성령도 그렇게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주권적 자유로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하여 거듭남을 체험하게 한다. 당신에게 이 바람이 불어왔는가? 혹시 그렇지 않다면 간곡하게 권하고 싶다. 꼭 바람을 맞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