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고슴도치의 우아함 ( The Hedgehog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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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프랑스 영화를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서 보는 편이다. 혼돈과 격변의 시기였던 대학때, 프랑스 문화원은 나에게 고마운 피난처였다.

영화속 인물들 중에는 관계에 서툴고 속마음을 잘 표현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 꼭 한명은 있어서 왠지 위로가 되었다.

고독한 현대인에게 권하고 싶은 프랑스 영화를 소개한다.

총명하고 조숙한 11살 소녀 ‘팔로마’는 삶이 부조리하고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프랑스 국회의원인 아버지는 늘 바쁘고, 우아한 엄마는 우울증으로 10년째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아왔다. 엄마는 화분의 식물들에게는 다정하게 말을 하지만 정작 딸에게는 무관심하다. 대학생 언니는 지극히 세속적이다. 팔로마네 식구들은 파리의 상류층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에 산다. 팔로마는 부모와 어른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위선, 이기심, 탐욕과 무지에 절망한다. 언니가 키우는 금붕어를 보면서 어항같이 답답한  세상에서 의미없게 사느니, 12살 생일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엄마의 수면제를 훔쳐모으고, 유서처럼 캠코더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찍으면서 자살 D-Day 165일을 카운트해 나간다.

54살의  ‘르네 미셸’은 27년째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한다.

뚱뚱하고 볼품없는 외모에 붙임성도 없다. 쓰레기통을 내놓고

우편물을 분류하고 현관을 청소한다. 르네는 수수한 외모와는 달리 방 한면 전체가 책으로 가득할 정도로 독서를 좋아하고 음악, 영화, 예술에 대한  애정과 식견이 뛰어나다. 작가 톨스토이의 이름을 딴 고양이 ‘레오’가 유일한 식구이다.

어느 날 노년의 일본 남자 ‘카쿠로’가 이사를 온다. 지배인이 카쿠로를 소개하는데, 르네는 무심코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다. 카쿠로는 바로 다음 구절로 대답한다. 아파트 관리인과 부유한 입주자, 촌스러운 과부와 품위있는 일본 노신사가 첫만남에서 공통 분모를 찾았다. 팔로마, 르네, 카쿠로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친해진다. 팔로마는 르네를 캠코더로 찍으면서 그녀의 지성과 따뜻한 성품을 알아차린다. 팔로마는 르네가 겉은 못생긴 비늘로 덮여있지만 내면은 우아함으로 가득한 고슴도치라고 믿는다. 카쿠로는 르네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카쿠로의 아파트에서 그가 요리한 일본 음식을 먹으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카쿠로는 10년 전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 둘은 르네가 좋아하는 일본 감독의 영화를 본다. 카쿠로는 르네에게 관심과 친절을 보인다. 카쿠로는 영특한 팔로마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함께 바둑을 둔다. 시간이 흐르고 팔로마의 12살 생일도 며칠 안 남았다. 팔로마는 책읽는 르네의 모습을 카드로 만들어 선물하면서 나중에 크면 아파트 관리인이 되겠다고 한다.

카쿠로의 생일날, 르네는 카쿠로가 선물한 옷을 입고 고급 식당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르네가 쓰레기통을 길 바깥에 내어 놓는데 트럭이 르네를 들이받는다.

르네가 죽고 카쿠로는 자신이 르네에게 선물했던 책을 팔로마에게

전해준다.

프랑스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뛰어난 두뇌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11살 소녀의 눈을 통해 삶의 허구와 진실, 관계와 소통, 세상사의 모순과 여러 인간들의 모습이 기발하고도 해학적으로 묘사된다. 전혀 다른 세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타인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삶에서 꼭 필요한 자질임을 알려준다. 괴팍하고 섬세한 르네, 자상한 카쿠로, 엉뚱하고 야무진 팔로마의 연기가 뛰어나다. 서정적인 음악과 정감있는 화면도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