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남과 여 (Mademoiselle Chambo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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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다. 딸이 초등학교때 렛슨을 받았는데 같은 선생에게 배웠다.

애들 셋을 키우며 정신없을 때,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렛슨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겨우 2년 배웠는데 계속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한가롭고 조용한 프랑스의 지방 도시. 목수인 ‘쟝’은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을 둔

중년의 가장이다.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아들의 숙제를 도와준다. 혼자된 늙은 아버지를 자주 찾아가서 발도 씻겨주고 얘기도 나누며 정성껏 보살핀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삶에 불만이 없다.

쟝은 아들 학교에 갔다가 담임 선생인 우아하고 가녀린 외모의 ‘베로니크 샹봉’을 만난다. 베로니크는 수업의 일환으로 학부모의 직업을 소개하는 시간에 쟝에게 집짓는 일에 대해 얘기해 줄것을 부탁한다. 쟝의 단순하고 쉬운 설명으로 수업은 성공적으로 끝마친다. 베로니크는 쟝에게 아파트의 창문 교체를 맡긴다. 쟝이 작업을 하는 동안 베로니크는 기다리다가 잠이 들고 일을 끝낸 쟝은 그녀의 책들과 음악 씨디, 베로니크가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사진들을 찬찬히 구경한다. 저녁 무렵에야 잠이 깬 베로니크는 멋진 새 창문을 보고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베로니크에게 쟝은 바이얼린을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이 없다며 주저하던  베로니크가 바이얼린을 잡자 애잔하고 고운 멜로디가 흘러 나온다. 부드럽고 속삭이는 듯한 선율이 이어지고 쟝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감성과 열정이 깨어난다. 쟝은 뒤늦게 알게 된 음악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베로니크는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에 쟝과 우연히 만난다. 새 창문에 칠한 페인트를 보기 위해 베로니크의 아파트에 다시 들른 쟝은 그녀의 연주가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베로니크는 자신이 좋아하는 바이얼린곡을 틀어주고 두 사람은 함께 연주곡을 듣는다. 마주 보지도 못하고 서로 빗겨가는 눈길과 나직한 한숨, 베로니크가 귀 뒤로 쓸어 넘기는 머리카락이 침묵속에서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 쟝이 베로니크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한다.

일년마다 임지를 바꾸는 베로니크는 늘 다른 지방으로 돌아 다녔다. 성실하고 우수한 그녀에게 교장은 은퇴하는 노선생 자리를 맡을 것을 권한다. 베로니크는 용기를 내어 쟝이 일하는 현장을 찾아간다. 수줍게 안부를 묻고 교장의 제의를 말하면서 이 곳에 정착하고 싶은 속내를 살짝 비친다. 쟝은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른다. 바로 전날 밤 아내가 늦둥이를 임신한 것을 알았다. 쟝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보고 베로니크는 돌아선다. 그리고 교장에게 거절 의사를 밝힌다. 베로니크가 떠날 준비를 마쳤을 때 쟝이 찾아와서 아버지의 생일 파티때 바이얼린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한다. 늙은 아버지에게 자기가 들었던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하고 싶다. 파티에서 베로니크는 영혼을 실은 연주로 어른과 아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다음 날 아침 기차역, 베로니크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다 체념한 듯 기차에 오른다. 그 시각에 쟝은 꾸렸던 여행 가방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가 여느 때처럼 식탁에 앉아서 가계부를 적고 있다.

‘예고없이 갑자기 찾아 온 사랑’이 위험하거나 격렬한 모습만은 아닐 거다. 쟝은 학식은 짧지만  건강하고 단순하고 정직한 남자이다. 노동으로 먹고 살던 남자가 처음으로 음악적 감성에 눈뜨고 바이얼린의 음색에 빠져든다. 그에게 음악의 세계를 알려 준 여자는 ‘모딜리아니’의 유화 속 인물같다. 이질적인 두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끌리는데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바이얼린 연주를 배경으로 시적이고 느리고 섬세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영화 특유의 절제된 감정과 최소한의 대사,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의 거리와 풍경 촬영이 유려하다. 질그릇처럼 단단하고 투박한 쟝과 버드나무같은 베로니크의 조화가 곱고 애틋하다. 다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