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떠나야 할 그 사람 (The Barbarian Invasion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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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남편 후배의 부고를 들었다. 아직 한창인 50대인데 간암이었다. 외식업으로 크게 성공했고 성격도 활달했다. 이혼한 전처와 장성한 자식들도 곁에 없이 혼자서 떠났다.

두려움 속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을 그를 생각한다.

캐나다 몬트리올. 역사학 교수인 ‘레미’는 평생을 자기 좋은 대로 살았다. 지적 오만에 독선적이고 와인과 여자들을 사랑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그는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지독한 통증과 고독으로 참담하다. 캐나다의 병원은 시장통처럼 시끄럽고 북적댄다. 병원 복도까지 환자  침대가 늘어서 있고, 좁은 병실은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다. 겨우 6인용 병실의 한 자리를 차지한 레미는 병원에서의 매일이 고달프다.

그의 끊임없는 바람기때문에 아내 ‘루이즈’와는 십여 년 전에 이혼했다. 루이즈는 이혼 후에 아들 ‘세바스티엥’과 딸을 홀로 키웠다. 루이즈는 죽어가는 전 남편을 보살핀다. 세바스티엥은 런던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했다. 딸은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닌다. 세바스티엥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레미와 오랫동안 부자의 연을 끊고 지냈다. 레미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루이즈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알린다. 세바스티엥은 마지못해 아버지를 보러 오지만, 아버지의 비난에 감정이 폭발한다. 루이즈는 사랑과 헌신으로 어린 자식들을 위했던 과거의 아버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아버지가 편하고 행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들은 상처와 원망을 덮어두고 아버지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병원 책임자에게 뇌물을 써서 비어있는 병동에다 일인용 병실을 만든다. 늦장 부리는 노조 기술자들에게 돈을 주고  순식간에 특실을 완성한다. 다음에는 흥신소를 통해 오래 전에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옛 친구들과 애인들을 찾아낸다. 그들에게 연락해서 아버지의 병 문안을 부탁한다. 친구들과 옛 애인들의 방문으로 레미의 병실은 갑자기 활기가 넘친다. 모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친구들은 레미의 병문안을 계기로 다시 뭉친다. 레미의 병실에서 음식과 와인을 나누며 지나간 젊음과 인생, 음악, 정치,역사에 대해서 왁자하게 토론을 벌인다. 레미의 통증은 몰핀으로도 듣지 않게 된다. 세바스티엥은 헤로인 중독자인 ‘나탈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렸을 적 친구이기도 한 나탈리는 헤로인을 구입해서 레미의 통증을 덜어 준다. 레미는 편안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몬트리올의 가을이 깊어지고 세바스티엥은 레미와 그 친구들, 엄마, 나탈리를 데리고 호숫가의 별장에 간다. 휠체어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아버지를 보면서 연민을 느낀다.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낸 레미는 세바스티엥이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고 말한다. 레미는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한다. 항해 중인 딸은 컴퓨터 화면으로 이별하고 루이즈와 친구들이 차례로 포옹한다. 세바스티엥이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나탈리가 헤로인을 레미의 정맥에 주사하고 레미는 평화롭게 숨을 거둔다.

부모와 자식, 우정과 의리, 삶과 죽음에 대한 유쾌한 영화이다. 미워하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아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헤로인을 구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 마약 담당 형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엉뚱함은 우습고도 감동적이다. 복지 천국이라는 캐나다의 열악한 병원 실태가 적나라하다. 레미가 죽기 전에 바라 본 황금빛 가을 숲과 푸른 호수등의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제 마음대로 살았는데 그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니 복많은 남자다.  나는 아들이 둘인데 세바스티엥처럼 부모를 위해 아낌없이 돈과 마음을 쓸 녀석이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