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시작은 키스(Delicac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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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가을이다. 주변의 색들이 짙어가고 괜히 감상적이 된다. 와인 한잔하면서 보면 딱 좋을  달달한 프랑스 영화 한편 소개한다.

파리의 카페. ‘나탈리’(오드리 토투)가 들어가자 카페 안에 있던 ‘프랑수아’는 아름다운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뒤따라 나와 벼락같은 키스를 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나탈리는 스웨덴 회사의 파리 지사에 취직이 되고 둘은 행복하다. 어느 날 조깅을 하러 나간 프랑수아가 차에 치여 죽는다. 홀로 남겨진 나탈리의 시간이 정지된다. 나탈리는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일 속에 파묻혀 지내고 3년의 세월이 흐른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회사에서 인정받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그녀의 팀이 구성된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장은 노골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지만 나탈리는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대한다. 팀 멤버중에 스웨덴 남자 ‘마르퀴스’가 있다. 평범한 얼굴에 벗겨진 머리, 촌스런 패션의 그는 남자로서의 매력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녀 사무실에 업무 보고차 들른 마르퀴스에게 나탈리가 갑작스럽게 키스를 한다. 제대로 연애 한번 못해본 마르퀴스는, 아름답고 능력있는 나탈리에게 기습 키스를 당하고 믿을 수 없어한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그녀의 방을 찾는다. 하지만 나탈리는 자기가 키스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마르퀴스의 설명에 당황하면서 실수였다고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마르퀴스는 이미 나탈리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고민끝에 마르퀴스는 다시 나탈리에게 가서 다짜고짜 키스를 해버린다. 나탈리는 애초에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데다 이 곰같은 남자의 당돌함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른다. 한번만 식사를 같이 하자는 마르퀴스의 간절한 청을 거절 못하고 나탈리는 그와 데이트를 한다. 나탈리는 마르퀴스의 자상함과 유머, 풍부한 지식에 호감을 갖게 되고 남편이 죽은 후 처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탈리가 마르퀴스와 데이트를 시작하자 회사 사람들은 충격받는다. 어느모로 보나 절대 어울리지 않는 두사람이다. 나탈리를 연모하는 사장은 마르퀴스를 따로 만난다. 볼품없는 외모의 말단 직원이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샀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다. 나탈리는 친구들에게 마르퀴스를 소개하는데 친구들 모두 어이없어 한다.

6개월간 심혈을 기울인 팀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날,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장의 조소에 상처를 입은 나탈리는 회사를 뛰쳐 나와 기차를 타고 고향 마을로 간다. 마르퀴스는 나탈리를 찾아가고 나탈리는 프랑수아의 무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나탈리 외할머니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낸다. 마르퀴스는 할머니 집의 오래된 정원에서 어린 아이, 십대 소녀, 그리고 프랑수아를 사랑했던 과거의 나탈리들을 만나고 그녀의 슬픔과 절망까지 전부 받아들인다.

웃기고 잔잔한 러브스토리이다. 예쁘고 세련된 나탈리와 나뭇꾼같이 투박한 마르퀴스는 현대판 미녀와 야수이다. 미남 미녀의 사랑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두 사람의 조합은 신선하다. 사랑, 상실, 관계, 치유같은 삶의 핵심 요소들이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묘사된다.

마르퀴스는 영화에 나오는 ‘이케아’가구 같은 남자. 멋없고 뚝뚝하지만 진실되고 든든하다.

왜 나탈리를 사랑하느냐고 따져 묻는 사장의 질문에 수줍지만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녀는 (나를) 최상의 나로 만들어주니까요.”(She makes me the best version of myself.)

최고의 사랑 고백이 아닌가.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못생긴 마르퀴스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가을 밤, 파리의 풍경과 멋진 의상들과 사랑의 마법에 유쾌하게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