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 Volver :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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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영화들은 거칠고 절망적인 현실속에서도 코믹하고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과 격정적인 음악, 치밀하고 교묘한 전개는 가히 독보적이다. 칸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고 각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뛰어난 작품을 소개한다.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는 언니 ‘쏠레’, 딸 ‘빠울라’와 함께 스페인 남부 고향 마을에

내려와서 부모의 묘지를 청소한다.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늙은 이모를 방문한다. 라이문다는 친구 ‘아구스티나’도 찾아간다. 아구스티나는 홀로 사는 라이문다의 이모를 돌봐준다. 라이문다는 결혼과 함께 고향을 떠나 ‘마드리드’에 나왔지만 삶은 팍팍하다. 14살 딸 빠울라를 키우며 억척스럽게 일을 하는데, 술 좋아하고 게으른 남편은 걸핏하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집에서 빈둥거린다. 쏠레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파트에서 불법으로 미용실을 운영한다. 어느 날 밤 일을 마치고 돌아 온 라이문다는 부엌 바닥에 쓰러져있는 남편의 시체를 발견한다. 술취한 남편이 딸을 겁탈하려고 하자 딸이 식칼로 아버지를 찌른 것이다. 충격으로 정신없는 딸을 진정시키고 라이문다는 침착하게 시체를 치운다. 바닥의 피를 닦고 시체는 담요에 싼다.  동네 식당 주인이 여행을 떠나며 빈 식당을 라이문다에게 부탁한다. 라이문다는 시체를 식당 냉동고에 숨긴다. 남편은 딸의 친아버지가 아니다. 그 때 고향의 이모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시체 뒷처리에 경황이 없는 라이문다는 쏠레에게 혼자 내려가라고 부탁한다. 쏠레는 마을 사람들이 죽은 엄마 ‘이레네’의 유령을 보았다는 말을 듣는다. 장례식이 끝나고 마드리드로 돌아 온 쏠레는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이레네를 발견한다. 이레네는 멀쩡하게 살아있다. 쏠레는 이레네를 자신의 아파트에 들인다. 외로웠던 쏠레는 엄마와의 생활이 즐겁다. 이레네는 여전히 재치있고 부지런해서 쏠레의 조수 노릇도 톡톡히 한다. 빠울라도 외할머니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레네와 사이가 나빴던 라이문다에게는 비밀로 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라이문다는 동네에서 영화 촬영이 있게 되자, 수십명 스탭들의 식사를 맡는다. 식당 주인의 허락도 없이 이웃 여자들의 도움으로 임시로 식당을 열고 음식을 만든다. 열심히 일한 덕에 식당은 성공한다. 라이문다는 시체가 든 냉동고를 고향 근처 강 가에 파묻는다.  친구 아구스티나가 암에 걸린다. 아구스티나는 라이문다의 부모가 화재로 죽은 날, 갑자기 사라진 자기 엄마의 생사를 알지 못해 평생 가슴앓이를 해왔다.

라이문다도 엄마 이레네가 살아 돌아온 것을 알게된다. 엄마와 딸은 얼굴을 마주하고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낸다. 이레네는 살기가 어려워 어린 라이문다를 이모에게 맡겼다. 집으로 돌아 온 라이문다가 어느 날부터 자기를 거부하자 딸에게 미움받는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남편이 라이문다를 욕보여 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채, 남편이 아구스티나의 엄마와 바람피우는 현장에  불을 지르고 두 사람은 불에 타 죽는다. 이레네는 딸을 지켜주지 못한 잘못에 대해 눈물로 용서를 구한다. 라이문다는 수치와 죄책감에서 비로소 해방되고 엄마와 화해한다. 결국 빠울라는 라이문다에게 딸이면서 여동생인 셈이다. 이레네와 딸들은 삼대가 함께 고향을 찾아간다. 이레네는 아구스티나를 찾아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간호한다.

영화 제목’ Volver’는 스페니쉬로 ‘돌아가다, 귀향하다’라는 뜻이다. 딸의 고통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엄마는 유령이 되어서라도 딸에게 돌아온다. 영화 속 여자들은 삶이 아무리 힘들고 잔인해도 칭얼대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피투성이 시체앞에서 “이 것은  내가 한거야. 너하고는 상관없어.” 라고 말하며 딸을 감싸는 라이문다는, 죽음에서 돌아와 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이레네와 같다.

욕망, 죄악, 수치, 비밀, 살인등 자칫 어두울 수 있는 내용들이 놀랍도록 따뜻하며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풍부하고 밝은 색상이 유쾌하고 여자들의 강인한 생명력, 우정과 의리, 모두의 본향인 어머니에 대한 아름답고 환상적인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