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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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영화도 책과 같다.  같은  작품도 20대에 본 것을  40넘어서 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상실을 겪으며 삶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어져서 일게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이유다.

1958년 독일의 ‘노이슈타트’.  15살 고등학생 ‘마이클’은 전차에서 내려서 갑자기 구토를 한다. 길 거리에서 토하면서 어쩔줄 모르는 마이클을 지나가던 여자가 다가와서  씻겨주고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도록 도와준다. 성홍렬에 걸려 석 달 동안 누워 있던 마이클은 병이 낫자 꽃을 들고 여자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전차 승무원인 여자는  마이클이 감사 인사를 해도 별 반응이 없다. 마이클은 여자가 옷 갈아입는 모습을 몰래 엿보다가 들키고, 당황해서 도망간다. 며칠 후 다시 여자네 아파트를 찾아 온 마이클은 사과를 하고 여자는 마이클을 유혹한다.

여자의 이름은 ‘한나’. 36살의 한나는 마이클을 아이라고 부른다. 마이클은 한나에게 정신없이 빠져들고, 둘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거의 매일 자신의 아파트를 찾아 오는 마이클에게 한나는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마이클은 “오디세이”, “헉클베리 핀의 모험”, “닥터 지바고” 같은 작품들을 들려준다. 한나는 마이클의 낭독을 진지하게 들으며 웃고 눈물도 흘린다. 책을 읽고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 둘 사이의 의식처럼 행해 진다. 마이클은 자신이 한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한나는 좀처럼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직장에서 승진이 된 한나는 어느 날 말없이 자취를 감춘다. 홀로 남겨진 마이클은 절망과 혼란으로 괴로워한다.

8년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수업의 연장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비원이었던 여자들의 재판을 참관한다. 아이들을 포함한 300명의 유태인 여자들을, 헛간에 가두고 불을 질러, 죽게 한 죄목이다.  그 중에 한나가 있는 걸 보고 마이클은 충격을 받는다. 다른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하는데,  한나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은, 헛간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한 서류에  서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판사는 필체 대조를 위해 글씨를 써 보라고 요구한다. 한나는  태도를 마꾸어 자신이 서명했다고 말한다.  글씨를 쓰는 대신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심문 과정을 지켜보던 마이클은 그제야 한나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녀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것이다. 방화를 지시한 책임자가 결코 될 수 없었다. 한나는 자신이 문맹임을  숨기며 살아왔다.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그 사실을 숨기느라 죄를 뒤집어 쓴다. 마이클은 자신이 증언하면 한나를 구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내버려 둔다. 한나는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그 후 마이클은 결혼을 하지만 불행하다. 딸이 태어나고 결혼 생활은 끝난다. 마이클은 과거에 한나에게 읽어 주었던 책들을 발견한다.  다시 그 책들을 낭독하고 녹음한다.  그리고 교도소의 한나에게 녹음 테이프와 녹음기를 보낸다. 한나는 교도소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같이 보고 들으면서 스스로 글자를 깨우친다. 마이클은 계속해서 책 낭송  테이프를 보내고 마침내 한나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1988년, 마이클은 교도관의 연락을 받는다. 한나가 사면으로 풀려나는데,  그녀의 사회 복귀를 돕는 후원자가 되어 줄것을 부탁받는다.  마이클은  한나의 면회를 간다.  그해 여름 이후, 30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다.  60이 넘은 한나는 40 중반의 마이클을 여전히 아이라고 부른다.  10년 동안 책을 읽어 준 마이클을 바라보는 눈빛에 감사와 애정이 담겨있다. 마이클은 일부러 거리를 두고 한나를 대한다. 마이클이 떠나고 한나는 자살한다. 세월이 흐르고, 마이클은 성장한 딸을 데리고  한나의 묘지를 찾아간다.  딸에게  40년전 여름,  15살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십대 소년과 삼십 중반 여자의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으로, 출간 당시 최고의 찬사와 공격을  동시에 받았다. 수치심, 비겁함, 비밀과 죄의식등 인간의  어두운  속성들이 전후 독일의 상황을 배경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소년을 사랑하고 문맹을 수치스러워하는, 관능적이고 순수하고, 강인하며 연약한  한나를  완벽하게 표현한 ‘케이트 윈슬렛’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미술과 셋트가 뛰어난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인간의 본질과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빼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