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가족,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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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김 <영화 칼럼니스트>
가족,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August: Osage County  2013 )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대상은 가족이다. 전쟁이나 질병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게 하는 힘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다. 가족 간에 주고받는 상처와 미움은 그래서 더 지독하고 아프다. 쉽게 용서가 안되는 것은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숨겨두었던 애증과 갈등, 비밀이 들어나면서 허물어져가는 한 가족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가족은 저 정도는 아니야 거나 우리집은  행복한 거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쉴지도 모른다.

8월의 한 여름. 오클라호마주,  ‘오세이지 카운티’의 ‘웨스턴’집안.

시인이자 술꾼인 가장 ‘베벌리’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의 아내 ‘바이올렛’은 구강암을 앓으면서 진통제와 온갖 약들에 중독되어 있는 데다 줄담배를 피운다. 베벌리는 행방불명 직전에 건장한 인디언 가정부 ‘죠나’를 고용했다. 죠나는 집안일과 환자인 바이올렛을 보살핀다. 남편의 실종으로 바이올렛은 장성한 세 딸과 여동생을 불러들인다. 바이올렛과 상극인 맏딸 ‘바바라’가 별거중인 남편과 사고뭉치 딸과 함께 도착한다. 허영심 강한 둘째 ‘캐런’은  약혼자를 데리고 왔다. 막내 ‘아이비’는 부모를 돌보느라 아직도 미혼이다. 수다스러운 이모와 속깊은 이모부도 왔다. 10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은 집안은 흐르는 땀과 후덥지근한 공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바이올렛은 오랜만에 만난 딸들에게 독설과 냉소를 서슴치 않는다.  줄담배를 피워대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엄마에게 큰딸 바바라는 가차없이 냉정하다. 며칠 뒤 베벌리의 시신이 호수에서 발견되고 식구들은 무더위 속에 정신없이 장례식을 치룬다.

장례식 저녁 만찬에 온 식구가 모였다. 푸짐한 음식을 앞에 두고 바이올렛은 독화살같은 말을 쏟아낸다. 자살한 남편과 딸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퍼붓다가 화가 폭발한 바바라와 악을 쓰며 싸우고 바닥에 뒹굴기까지 한다. 장모와 아내에게 진저리를 치는 바바라의 남편, 대마초를 피워대는 바바라의 어린 딸,  캐런의 호색한 약혼자, 소심한 아들 ‘챨스’를 무능하다고 가족들 앞에서 망신주는 이모와 그런 아내를 못 견디는 이모부까지 얽혀서 한여름의 웨스턴 집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자신의 말로 가족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바이올렛은 어린 시절 그녀의 비정한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그대로 되돌려주고 있다.  아이비는 사촌 챨스를 몰래 사랑한다. 서로 치고받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챨스가 이모와 아버지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된 아이비는 충격을 받고 집을 나간다. 바바라는 남편이 자살할 것을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는 엄마의 고백을 듣고 떠난다. 혼자 남은 바이올렛이 고통과 절망 속에서 딸과 남편을 부르며 울부짖고 가정부 죠나가 그녀를 다독인다.

퓰리처상을 받은 연극을 영화로 만들었다. 탄탄한 구성과 쫄깃한 대사가 재미와 긴장감을 준다. 입만 열면 독설을 내뱉는 바이올렛과 자신도 엄마처럼 될까 봐 안절부절하는 큰딸을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가 뛰어나게 연기한다. 보는 데 감정 소모가 심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바이올렛을 보면서 연민과 함께 정신이 번쩍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