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그대에게 가는 길 (Cherry Blossoms : 2008)

333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어제 남편 고등학교 연말 파티가 있었다. 30년 넘게 일년에 한번씩은 만났던 선배 부부들의 변화를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어쩜 그렇게 한결같냐는 덕담을 건네기가 주저될 정도로 늙고 쇠약한 모습들이 많다.  그 중 두 커플이 결혼 50주년을 맞아서 축하를 받았다.  50년 동안 부부가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수십년을 같이 산 배우자를 보내고 홀로 남겨 진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일일 것이다.

‘루디’와 ‘트루디’ 부부는 독일의 아름다운 바바리안 마을에 살고있다.  정년을 앞둔 남편 루디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기차를 타고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한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그에게는 평화롭고 행복하다. 아내 트루디는 남편을 위해 정성껏 점심을 싸고 다림질을 한다. 세 자식들은 다 자라서 가정을 이루거나 직장을 가지고 부모와 떨어져 산다. 트루디는 오랜 결혼 생활동안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녀는 일본의 ‘부토’ 춤을  동경해서 강습을 받는다. 언젠가는 꼭 남편과 함께 일본에 가서 후지산과 벚꽃을 보겠다는 소원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 암으로 판명되고 트루디가 먼저 알게 된다. 의사는 남은 시간에 하고싶었지만 사느라고 바빠서 못해본 것들을 하라고 권한다. 트루디는 남편에게 사실을 숨기고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베를린에 사는 큰 아들과 딸네 집을 방문한다. 아들 부부와 손주들, 레즈비언인 딸은 자기들의 삶에 바빠서 갑자기 찾아 온 늙은 부모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거기서 발틱 해변의 휴양지로 떠난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루디는 아내와 함께여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호텔방에서 트루디가 갑자기 죽는다. 둘이서 떠난 여행에서 루디만 돌아온다. 홀로 남겨진 루디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아내의 옷을 자기 옆에 놓고 잠을 청하기도 하고, 아내가 읽던 책을 읽으며 그녀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쓴다. 루디는 죽은 아내가 일본과 일본의 ‘부토’ 춤을 동경했던 것을 기억하고 막내 아들이 지사원으로 일하는 토쿄로 간다. 아들의 아파트에서 머물면서 아들이 출근하면 외투속에 아내의 스웨터를 껴입고 밖으로 나간다. 낯선 토쿄 시내를 돌아다니고 아내의 손수건을 곳곳에 매어 둔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가 귀찮고 빨리 떠나기를 바란다.  루디는 벚꽃이 만발한 공원에 간다. 분홍과 흰 꽃들이 어지럽게 피어있는 벚꽃 나무앞에서 외투자락을 열고 아내의 스웨터에게 속삭인다. “여보, 이 벚꽃 좀 봐.”(Trudi, This is for you.) 루디는 공원에서 얼굴에 분장을 하고 ‘부토’춤을 추는 일본인 소녀 ‘유를 만난다. 18살인 유는 일년 전에 엄마를 잃고 공원에 텐트를 치고 산다. 유는 루디의 상실감과 슬픔을 잘 이해하고 두사람은 짧은 영어로 나이, 문화, 언어의 벽을 넘어 친구가 된다.  트루디는 생전에 ‘신령한’ 후지산을 보고싶어 했다. 루디는 유에게 같이 후지산을 보러 가자고 부탁한다.

산 밑에 도착했지만 후지산은 구름 뒤에 숨어 있다. 두 사람은 호숫가의 여관에 묵으면서 날씨가 갤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 사이 루디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유는 정성껏 간호한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루디 앞에 후지산이 달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루디는 아내의 옷을 입고 얼굴에 분장을 하고 호숫가로 나간다. 그리고 천천히 ‘부토’춤을 흉내내어 추기 시작한다. 환상속에서 죽은 아내가 나타나 그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후지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다음 날 아침 유는 호숫가에서 죽어있는 루디를 발견한다. 루디의 몸은 일본의 화장터에서 재가 되어 아들과 유에게 전해진다. 나중에 자식들은 아버지가 일본 소녀와 여관에 묵은 것에 수치스러워하고, 엄마의 옷에 집착한 것을 비난한다.

아름답고 애절하고 감미롭고 쓸쓸한 독일 영화이다. 죽은 아내의 기억과 체취를 잊지못하는 루디의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리다. 독일과 일본의 서로 상반되는 배경은 슬프면서 화려한 대조를 이룬다. 찬란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버리는 벚꽃같은 것이 인생이다. 루디가 죽기 직전 아내와 만나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하고싶었던 것들 더 미루지말고 하나씩 해보자. 또 이렇게 속절없이 한해가 지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