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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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김 <영화 칼럼니스트>

 

허리케인 하비가 휩쓸고 간 자리, 살아남은 사람들은 안도감 보다  상실과 절망감으로 힘들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도 기가 막히다.  눈 앞에서 80대 장인,장모와  4자녀가 탄 자동차가 물에 잠겨 떠내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속수무책 이었던  가장.  차오르는  물 속에서 어린  딸을 등에 태워 구하고 자신은 희생한 엄마.  삶은 때때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평온했던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하기도 한다. 그래서 삶은 살아 내는 것, 견뎌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 챈들러’는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한다. 입주자들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고 허드렛 일을 하면서  삭막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어느 겨울 날  형 ‘조’가  위독 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내려간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형은 사망했고  홀로 남은  조카 ‘ 패트릭’과 형의 장례를 치룬다. 하지만 추운 날씨 탓에 시신을 매장할 수 없어서 날이 풀릴 때까지 형의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하게 된다.  당분간 조카와 지내게 된 리는 형이 자신을 조카의 후견인으로  정했다는  유언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삶도 겨우 지탱해 가는 처지에 패트릭을 돌볼  수가 없다.  여기서 리의 과거가  회상된다. 리는 사랑하는 아내 ‘랜디’와  어린 세 자녀와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산다.  같은 마을의 형과 조카 패트릭과도  사이가 좋다.  겨울 밤 동네 주유소로 맥주를 사러 나가면서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었는데 돌아오니 집이 불길에 뒤덮혀있다.  아내만 겨우 구조된다.  리는  자살을 시도 하지만 형의 만류로 실패하고, 아내와 이혼하고 고향을 등진다.  자학, 죄책감, 고통을 전부 짊어지고 자신을 부인한 채 유령처럼, 기계처럼 지내왔다. 리에게 고향은  끔찍한 과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아물지 않는 거대한 흉터이다. 리는 조카를 데리고 보스턴으로 가려 하지만  친구들과 학교를 떠나기 싫은 패트릭은 펄쩍 뛴다.  결국 고향 친구에게 패트릭의 후견인을 부탁한다.  봄이 되어  형의 시신을  매장하는 날,  전처 랜디가 재혼한 남편과 영결식에 참석한다.  리는 패트릭이 언제라도 자신에게 와서 묵을 수 있도록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구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둘이서 형이 남겨 준 보트를 타고 낚시를 간다.

살면서 만나는 태풍에도 우리는 견디고 나아간다.  도저히 치유되지 않을 것 같은 리의 불행도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등장인물들의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가  훌륭하고,  쓸쓸하고 서정적인 화면,  다정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이 일품이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각본상 수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