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유령같은 사랑( Phantom Thread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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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한 편의 문학 작품이나 미술관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영화가 있다. 온갖 수퍼 히어로들과 액션, 스파이물, 요란한 코미디의 범람속에서 우아하고 격정적이고 품격있는 영화가 주는 만족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상의 와인을 맛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950년대 런던. ‘ 레이놀즈 우드칵’은 왕족, 영화 배우, 부유한 사교계 여성들의 옷을 만드는 명망높은 디자이너이다. 성격이 까다롭고 치밀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기준대로 진행되어야 만족한다. 그가 운영하는 “하우스 오브 우드칵”의 드레스는  런던 상류사회 여성들의 욕망이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영감에 따라 작품을 만들고 하우스와 고객 관리는 누나인 ‘시릴’이 도맡아서 빈틈없이 운영하고 있다. 어렸을 때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레이놀즈는 자신이 만드는 드레스 안감 사이에 비밀스런 문구를 꿰매어 넣는다.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그에게 여자들은  잠깐씩 연애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버리는 대상이다. 시릴은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해준다.

어느 날 시골 식당에  들른 레이놀즈는 키가 크고 촌스러운  웨이 트리스 ‘알마’에게 호감을 가지고 데이트를 신청한다. 알마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데려가서 치수를 재고 드레스를 제작하는데 알마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모델, 조수, 연인이 되어 하우스에 살게 된다.  알마는 레이놀즈가 일하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그의 뮤즈가 되어 옷을 소화하면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레이놀즈는 자신의 방식에 반기를 들고 따지는 알마에게 피로를 느끼고 화를 낸다. 일방적이고 오만한 레이놀즈에게 절망한 알마는  야생 독버섯으로 차를 만들어 레이놀즈에게 건넨다. 벨기에 공주의 결혼 예복을 만들던 레이놀즈가 쓰러지고 알마는 헌신적으로 그를 돌보고 밤을 세워 예복도 완성한다. 알마의 정성과 간호에 감동한 레이놀즈는 알마 에게 청혼한다. 결혼 후 다시 갈등이 시작된다. 자신의 세계를 휘젓는 알마를 견디지 못하는 레이놀즈는 알마와 헤어지려고 한다. 알마는 독버섯으로 오믈렛을 만들고 레이놀즈에게 자신의 의도를 밝힌다.  남편이 다시 병들고 쇠약해져서 오롯이 자신만을 의지하기를 그래서 자신의 간호와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완벽주의자 레이놀즈는 알마의 사랑과 옷에 대한 안목도 자신의 방식대로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했다.  레이놀즈는 수긍하고 오믈렛을 삼킨다. 알마는 두 사람의 미래를 상상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자신이 남편의 파트너가 되어 하우스를 운영하는 날을.

50년대 런던 거리와 상점들, 나선형의 계단으로  올라가는  레이놀즈 하우스에서의 패션쇼, 실제로 노련한 재봉사들을 등장시켜 보여주는 수작업 드레스 만드는과정들이 정교하고 현란하다. 등장 인물들간의 팽팽하고 감정적인 연기 앙상블과 감미롭고 아름다운 음악도 훌륭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에 드는 옷감을 떠서 옷을 맞추고 싶어진다. 그리고 영원한 화두. 도대체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어둡고 음산해도 괜찮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