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천상의 만찬( Babette’s F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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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모레가 감사절.  흩어져 있던 가족, 친지들이 함께 풍성한 저녁 만찬을 나누는 날.

맛있는 음식은 증오와 분열을 치유하고 용서와 사랑으로 사람들을 하나되게 만든다.  시간이 흘러도 재미와 감동이 묵직한 음식을 소재로 한 명작을 소개한다.

19세기 덴마크, ‘유틀란드’ 반도의 해안가  작은 마을.

황량하게 고립된 이 마을은 경건하고 엄격한 종교생활을 하는 나이먹은 주민들이 살고 있다. 목사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마르티나’와 ‘필립파’는 결혼도 안하고, 둘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늙어간다.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의 노처녀 할머니들이지만 여전히 고운 모습이다.  율법적인 신앙에 길들여진 주민들은 생활에 즐거움이 없고 퉁명스럽고 비판적이다. 무미건조한  마을에 어느 날  이방인 한 명이 찾아온다. ‘바베트’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자. 기품있고 건장한 체구의 바베트는 마르티나 자매에게  자기를 그녀들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보답으로 요리와 청소를 맡겠다고 한다. 두 자매는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바베트를 받아 들인다.  마을 사람들은 이교도(천주교)에  외국인인 바베트를 의심의 눈으로 본다.

35년 전, 마르티나와 필립파는 이 갑갑한 마을을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핸섬한 기병대 장교 ‘로렌스’가 아름다운 마르티나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또 파리 오페라 가수인 ‘아치’는 교회에서 찬양하는 필립파의  목소리에 반했다. 그가 직접 노래를 가르치고, 파리로 데려가서 오페라  무대에 데뷔 시키려고

계획한다.  그러나 남자와의 사랑이나 세상적인 쾌락(“돈 죠반니”를 듀엣으로 부를 때 느끼는 즐거움)을 죄악시하는 금욕주의적 신앙이 이들을 가로막았다.

아버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마르티나와 필립파는 온 마을 사람들에게 만찬을 베풀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용하게 집안 일만 하던 바베트가  나선다. 만찬을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거다. 모든 비용과 재료 구입, 요리, 음료 일체를 전부 자신이 준비하겠다고 한다. 두 자매는 마지못해 승락한다.

그 때부터 바베트는 바빠진다. 파리를 들락거리며 장을 본다. 살아있는 메추라기, 거북이, 해산물, 치즈,  야채와 와인등 온갖 종류의 진기한 식재료들이 속속 도착한다. 의심많은 마을 사람들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베트를 관찰한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다짐을 한다. 만찬이 준비되면 먹어는 주지만, 맛있어 한다거나  음식을 칭찬하거나 하지 않기로 입을 맞춘다. 한마디로 외국인 이교도 여자에게

쾌락에 빠지지 않는 그들의 경건함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드디어 만찬 날. 마을 사람들과 초대받은 귀빈(이제는 장군이 된 로렌스)은  바베트가 정성들여 준비한 최고의 코스 요리를 먹기 시작한다.  일생에 처음 맛보는 기가 막힌 요리임에도, 마을 사람들은  약속대로 무표정을 가장한다.

오직 장군만이 매 코스마다 진정으로 감탄과 찬사를 표한다. 그리고  그 맛이,

자신이 즐겨 다녔던 파리 ‘그랜드 호텔’의 천재적인 여셰프의 솜씨임을 알아차린다.

메추라기 요리, 거위 간 요리, 거북이 수프, 치즈, 럼 케익, 샴페인…최고의 재료로 만든 최고의 요리를 먹어가는 도중 기적이 일어난다. 성마르고 까칠한 마을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변화한다.

용서와 화해, 사랑과 감사가 회복된다. 음식을 전부 먹어치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아주 행복해져서 돌아간다. 부엌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바베트가 위대한 작품을 끝낸 예술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온갖 쓰레기와 설거지감들이 잔뜩 쌓여있다. 파리 코뮌의 폭동을 피해  덴마크 시골로 피신한 바베트는 만 프랑짜리 로토가 당첨되자, 그 돈을 전부 마을 사람들을 위한 하룻밤 만찬에  써버린 것이다.

유쾌하고  다정하고 예리하다. 서정적인 유럽의 시골 풍경과  걸작 예술품같은 요리들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위선적인 신앙으로 불행한 인간들의 연약함은 웃음이 나온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육신의 기쁨(이성간의 사랑,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등)을 순수하게 누리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부(돈,시간, 수고, 정성 그리고 영혼까지)를 내어 준 바베트를 닮아 보자.

그게 어디 쉽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