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시밭의 백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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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부활절을 기념하며 가슴에 한아름 백합꽃이 담긴 화분을 안아 들고온 성도들이 예배실 강단앞에 그것을정성껏 놓아둡니다. 예배시간 내내 백합꽃 향기로 가득찬 교회당은 “다시 사신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며 기쁨의 감격으로 충만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백색의 백합화는 힌 옷입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순결함처럼, 부활절의 시즌을 맞춰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인듯 합니다. 그리고 마치 기쁨의 소리를 전하는 트럼펫과같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힘있게 전하는 꽃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가시밭에 핀 백합화”는 죽음의 고난을 이겨내신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듯, 핍박과 박해를 견뎌낸 성도의 순결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운 백합화의 향기는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더욱 진한 향기를 내뿜듯, 고난을 이겨낸 성도의 삶은 세상에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감동의 삶이 되어집니다. 예수님의 다시사심을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성경의 많은 부활의 증인들은 하나같이 가시밭에 피어난 백합화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소식을 증언하다가 끝내 그들은 목숨까지 드리는 “순교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헬라어 말투스(μἀρτυς)는 흔히 ‘순교자’로 번역하지만, 본래는 ‘증인’이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순교자”가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같은 부활의 목격자들을 고린도 서신에 열거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였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있습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15:4-8)예수님의 부활의 증인들은 하나같이 순교당함으로 그들의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목베임을 당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도 하고, 기름이 끊는 가마솥에 던져지기도 했고, 죽는 순간까지 외로운 섬의 감옥에 갇혀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 제자는 살이 벗겨지도록 채찍에 맞아 죽기도 하고, 돌에 맞아 죽기도 했고, 사지가 찢기는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죽음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은 이토록 죽음앞에서조차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부활의 신앙때문였던 것입니다. 바울은외치길,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고전 15:55) 죽음을 향해 비웃듯 그리스도안에서 언제나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빠진 믿음은 헛된 믿음이요, 부활을 전파하지 않는 소식은 헛된 설교에 지나지 않으며, 부활이 없는 우리의 모든 수고는 가련한 희생에 불과할 뿐입니다.

금년 부활절 아침엔 가슴아픈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교회 테러때문입니다.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신성한 예배당에서 자살테러 사건이 도심의 여러 교회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던 것입니다. 테러에 희생당하여 목숨을 잃은 숫자가 290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아직도 세상의 많은 곳들에선 예수부활의 증언자인 교회를 향한 핍박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실로 우리의 조국 땅에서도 복음이 전파되어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기까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구한말부터, 일제치하, 그리고 공산당 침략에 이르기까지 숱한 신앙인들의 순교의 피가 조국강토를 적시었습니다. 그들이 견고히 지킨 신앙의 모습은 “가시밭에 피어난 백합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시에 찔리면 찔릴수록 더욱 진한 향기를 뿜어낸 순교자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주님의 증인이 되어 기꺼이 고난을 감내하며, 믿음의 정절을 지켜가는 모든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리라 믿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여,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아가2:2)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