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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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서로 다른생각을 가진 그룹이었다. 특별히 로마제국이 유다에서 세금을 걷는 것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은 반대를, 헤롯당은 찬성을 하였다. 바리새인의 경우, 유대교 제사 때 종교세를 내고 동시에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야 하는 이중과세가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면서, 실제로 바리새인들의 이익이 줄어들게 되었기 때문에, 바리새인은 로마제국의 세금을 반대했다. 그러나 친로마그룹인 헤롯당은 로마제국으로부터 당시 유다백성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을 견제하라는 뜻으로 물질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로마가 세금을 걷는 것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책잡고 해꼬지하고자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한 사람을 보내서, “가이사(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막 12:14)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한 마음이 된 질문이 아니라, 양쪽이 서로 해결하지 못하는 논쟁을 예수에게 무책임하게 던져 놓고 예수를 시험하고 문제를 만들고자 질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번째는 막 12장 16절에서 로마제국시대에 사용하던 동전인 데나리온을 달라 하고는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묻고, 그것이 로마황제 가이사의 것임을 확인한다. 이 예수의 반응은 ‘이 시대가 누구의 시대이고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며 누가 신(神)과 같은 우상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데나리온에 가이사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은 사람은 돈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주인은 바로 로마황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 데나리온은 제국주의 국가가 시행했던 나쁜 조세제도 중에 하나인 인두세(사람의 숫자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 세금)를 내도록 하는 동전이었다. 가난한 백성들은 인두세를 내기 위해 로마황제 얼굴이 그려져 있는 데나리온을 모아야 했다. 돈이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데나리온을 모으지 못하며, 자식을 팔아야 했고 때로는 자신이 노예가 되며 형제를 종으로 팔아야 했다. 인간을 철저히 물질화시켰던 것이 데나리온이었고, 돈의 주인인 로마황제 가이사가 그들의 주인임을 보여주는 절대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예수는 두번째 반응을 보인다. 예수는 막 12장 17절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로 대답한다. 이것은 보통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세상에서는 세금을 잘 내고, 교회에서는 십일조와 헌금을 잘 내라고 해석하는 예수의 뜻은 아니었다. 예수의 본래적 의도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되돌려주고(헬라어 – 아폴디도미),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세금과 십일조(헌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우상은 세상에 던져 버리고, 진짜 가져야 할 진리를 품고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하는 복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2000년이 지났으니 더욱 예수의 뜻을 따르고 있을까? 아니다. 여전히 교회와 신앙의 공동체마저도 돈의 신, 곧 데나리온에 새겨진 가이사와 같은 물질의 우상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지배하고 있다. 돈 때문에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이 아닌가? 돈으로 장로와 권사, 집사의 직분을 사고, 목사는 성도를 돈으로만 생각하기도 한다. 성도들도 교회를 찾으면서, 얼마짜리 교회인가, 얼마의 돈으로 성전의 첨탑을 높이 올린 교회인가, 어떤 목사에게 축복기도를 받아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교회를 선택하지 않는가?

아직도 교회와 신앙 속에는 예수 시대의 데나리온이 통용되고 있다. 돈의 신이 지배하는 그리스도인과 물질의 우상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가 세상에 비춰지는 한, 교회의 회복과 개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집어 던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손에 쥐어지는 돈의 신이 새겨진 데나리온 대신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구원과 생명이신 성령을 품고 사는 사순절 기간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