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갈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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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왕상 19:4) 여기 절망과 낙담에 빠져서 죽기를 갈망하는 한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던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내 조상들 보다 낫지 못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죽은 사람보다도 못한 형편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느니 죽는게 낫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다 살다 힘들면 마지막으로 최후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자살이죠. 요즈음 우리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봅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지”.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자살이라는 극단적 순간에서 그 상황을 역으로 돌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울증 끝에 오는 자살의 충동은 이미 이성으로 지배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자살충동이 발생하는 순간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충동, 수면과 섭식등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흥분됩니다. 이때 이 변연계를 통제하는 것이 전두엽의 역할인데 우울증 환자들은 전두엽의 기능이 매우 저하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살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극도의 우울증 가운데서 죽기를 청하고 있었던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하게도 그가 죽기를 갈망하던 모습의 바로 앞 장면은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그 어떤 선지자 보다도 가장 멋지고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과 대결하여 보란 듯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성공의 정점에 이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 성공한 선지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고 낙담하게 하였을까요? 그는 갈멜산의 승리 이후에 이제는 모든 우상을 숭배하는 세력들이 멸하여 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세상을 변화 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이세벨의 협박과 죽음의 공포 뿐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세벨은 건재하고 오히려 더 무섭게 엘리야를 조여 오는 것입니다. 사실 엘리야의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은 죽음의 위협보다 바로 실망과 낙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쪽으로 도망합니다. 유다땅 브엘세바까지 거기는 이세벨의 영향력이 못 미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서도 안주하지 못하고 미친듯이 더 남쪽으로 도망하여 마침내 사막 깊숙한 곳 로뎀나무 아래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죽기를 간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갈 길을 잃었습니다. 그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달려왔던 선지자의 길, 그가 살아온 선지자로서의 모든 길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인생의 방향을 잃고 목적도 잃고 갈 곳도 없는 그런 순간에 다다른 것입니다. 갈 길을 잃은 엘리야.

그런데 갈 길을 잃은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왕상 19:5-7) 인생의 방향을 잃고 갈 곳 없이 헤매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갈 길이 있다고 하십니다.  같은 성경절을 다른 번역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새번역), “일어나 먹어라. 네가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바른성경), “일어나 먹으라. 갈 길이 네게 너무 머니라.”(킹흠정) 갈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갈 길이 있다는 것은 갈 곳이 있다는 것이고 방향과 목적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갈 길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일어나 음식을 먹고 다시 힘을 얻어 밤낮 사십일을 달려 갔습니다. 그가 가야 했던 곳, 갈 길의 목적지는 어디였습니까? 그가 달려간 곳은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습니다.(왕상 19:8) 산은 산인데 호렙산, 그것도 그냥 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산.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 방향을 잃었느냐? 절망되고 낙담되었느냐?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라. 갈 길을 잃은 영혼들에게 오늘도 하나님은 초청하십니다. 나에게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