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사는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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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이웃교회 담임/미육군 채플린)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박국3:17-19)

감사는 선택입니다. 그것은 넘치는 풍족함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감정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겹고 치열한 환경속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절망과 분노에 찬 삶을 살기보단 “감사에 찬 영성”(the spirit of thanksgiving)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역사는 이같은 필그림들(Pilgrims)이 가졌던 감사절의 영성에서 출발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1620년 9월 16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항해하는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합니다. 그리고 65일이 지난 그해 11월 21일 메사추세추의 플리마우스항에 도착한 그들은 그해의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맞이해야했습니다. 각종 질병으로 다음해 봄을 맞이하기까지 함께 승선했던102명중 46명만이 생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며 정착한 지 한 해가 되었을 때에, 그들은 모든 역경속에서도 감사의 축제를 열어 이웃을 초청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정착에 도움을 주었던 왐파노아그 인디언 90명의 전사들도 이 감사의 축제에 함께하였습니다. 그들의 “첫 감사절”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여건속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한 귀중한 신앙의 행동였던 것입니다. 그렇듯 첫번째 땡스기빙의 감사는 선택였습니다.

감사절에 크리스챤들에게 애송되는 하박국의 찬송시는 “감사란 풍요를 좇는 물질주의에서 오는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풍요와 성취를 신으로 섬기는 물질주의에 빠질 때, 사람들은 비교의식과 열등감으로 인해 인생을 절망가운데 살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창조한 이가 하나님이요,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자”(Beloved One)임을 믿는 신앙과 감사만이 인생이 가져다 주는 온갖 혼돈과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멜로디 비티(Melody Beattie)라는 여성 상담가는 감사함의 태도가 가져다주는 삶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는 인생의 풍족함을 여는 열쇠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은 것이 얼마나 귀한 지를 알게하며, 거부하고 부정하는 인생관에서 수용하고 용납하는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다주고, 모든 내적 혼란스럼움이 질서를 회복하는 경험을 가져오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성적 착취와 강간, 마약과 알콜중독이라는 끔찍한 인생의 고통에서 치료받고 새롭게 되어 이제는 수많은 이들을 돕는 상담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이 가져다준 그녀의 인생 경험을 통한 귀한 교훈을 우리도 귀담아 듣을 필요가 있습니다.

며칠전 CNN뉴스의 한 타픽으로 “중력을 극복한 (Defying Gravity)휠체어의 사나이 애론 포더링햄”의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척추신경에 이상으로인해 하반신을 쓸 수 없었던 애론은 입양한 부모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그는 세계 최초로 익스트림 스포츠인 휠체어를 탄 스테이트보딩에 도전합니다.  그는 휠체어를 탄 채 공중을 날며, 전후로 회전하는 엄청난 기량을 갖춘 스케이딩보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를 가르켜 세상은 “중력의 무게를 극복한 사람”으로, 세상의 선입관과 불리한 신체적 조건이 가져다주는 온갖 무거운 인생의 중량을 극복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추수 감사절을 보내며 감사란 선택임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마주하는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고 버거워서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이땅에 나를 보내신 창조주의 뜻을 믿고 감사함으로 사는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적은 지금도 진행형임을 믿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해피 땡스기빙! 감사합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