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예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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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예정은 초월적 차원의 개념이고 자유는 사차원 세계의 언어이다. 그렇다면 초월적 차원은 존재하는가? 초월적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이 단지 공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초월적 차원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이 거하게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범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는가? 성경은 이곳의 위치를 분명히 설명한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그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 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구스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창 2:10-14).

여기에 네 강이 언급되는데, 이를 계기로 여러 학자는 에덴을 이란과 이라크 접경지역으로 보기도 한다. 에덴은 신화가 아니며 분명 실재하는 곳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왜 지금 에덴동산이 눈에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에덴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천사들을 시켜 지키게 해서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그를 쫓아내신 다음에, 에덴 동산의 동쪽에 2)그룹들을 세우시고, 빙빙 도는 불칼을 두셔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 3:24). 즉 하나님은 에덴을 폐쇄하지 않으셨다. 단지 사람이 에덴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교통이 발전되고 인공위성까지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 에덴이 중동 어느 지역에 있다면, 지금쯤이면 모든 지역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을 것이다. 최소한 인공위성으로라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사가 지키고 있는 에덴은 발견되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일까? 가장 적절한 대답은 에덴은 초월적 차원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덴은 관념이 아니고 실재하는 곳으로 이 땅 위에 있지만, 초월적 차원에 있기에 우리가 볼 수 없다고 설명할 수 있다. 5차원의 모델을 가정할 경우, 같은 시간과 같은 곳에 여러 개의 존재가 동시에 있을 수 있다. 즉 에덴은 특정한 장소에 계속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지만 우리는 인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직선을 하나 그려보자. 그리고 바로 옆에 또 다른 직선을 원래 있는 직선에 붙여서 그려보자. 가로 10이라는 지점을 두 직선 모두에서 찾아보자. 이 두 개 지점은 두 직선 모두에서 같은 곳에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다. 멀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세계(직선)에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예수님이 계신 천당(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영혼이 머물게 될 천당은 관념이 아니고 실재하는 곳이다. 이곳에 예수님은 단지 영혼으로서가 아닌 육체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천당은 물리적인 곳(형이하학)이기도 하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장면을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행 1:9-10)라고 소개한다. 영광스러운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은 물리적으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렇다면 천당은 우주 어디에 있는가? 아주 빠른 우주선을 타고서 온 우주를 다 헤집고 돌아다니면 예수님이 계신 천당을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초월적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천당은 공간적으로 멀리 있어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지만 다른 차원이므로 4차원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인식할 수 없다고 본다. 천당과 에덴은 양의 문제가 아닌 질적인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