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예정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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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성경은 하나님의 예정에 관해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미리 프로그램화된 로버트가 아니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과거에 미리 결정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 능력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지금까지 필자는 하나님의 예정과 사람의 자유(또는 책임)에 관한 성경의 증거를 각각 논했다. 이번 호에서는 하나님의 예정과 사람의 자유가 동시에 나타난 성경의 증거를 다루고자 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난 대표적 사건으로 이집트 왕 바로의 불순종을 들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하셨다. 하지만 이집트의 왕 바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아,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바로를 벌하신다. 성경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은 이유를 (1)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2) 바로 스스로가 자기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먼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출 4:21).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9: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출 10:1).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 11:10).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출 14:4-5).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출 14:8).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출 14:17)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가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막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전한다. 하지만 성경은 같은 사건을 이번에는 바로에게서 이유를 찾는다. 즉, 바로 스스로가 자기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출 8:15).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 8:19).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 8:32).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9:34-35).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바로는 자기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계획에 도전했다. 그렇다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예정) 때문인가? 아니면 바로의 자유의지 때문인가? 성경은 분명 둘 다 언급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역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신학적 논쟁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현재는 개혁주의와 아르미니안 주의로 나뉘게 되었다.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입장에서 해석하려고 하고 아르미니안 주의에서는 인간의 책임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려고 한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