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의미(죄의 심판으로부터 자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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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구원은 죄와 죄의 심판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죄짓지 않는 삶,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구원이고, 죄의 심판을 받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 구원이다. 죄의 심판은 간접적 심판이 있고 직접적 심판이 있다. 간접적 심판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창조의 법칙, 이를테면 인과율의 법칙을 통해서 임하는 심판이다. 예를 들어, 살인자는 마음의 고통을 당함으로 심판을 받고, 국법을 통해 심판 받는다. 직접적 심판은 하나님이 초월적으로 개입하셔서 내린 벌이다. 예를 들면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에게 임했던 문둥병의 심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갑작스러운 죽음, 고라와 그의 일당의 멸망이다. 구원은 이생에서 이러한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다. 죄짓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 당연히 심판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심판은 이생에서의 심판과 영원한 심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죄인은 이생에서 벌을 받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음의 고통, 사회적 고통, 경제적 고통, 육체적 고통, 세상 법에 의한 형벌과 더불어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으로 인한 심판을 받는다. 영원한 심판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전 인류를 심판하는, 소위 말하는 백 보좌 심판을 의미한다. 이 심판을 통해 영생과 영벌이 완성된다. 물론 이생에서의 심판과 영원한 심판 사이에 있는 음부의 고통이라는 심판도 있다. 죄인의 영혼은 음부에 가서 부활 때까지 고통을 당한다. 구원이란 이 모든 심판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간접적 심판이건 직접적 심판이건 이생에서의 심판이건 마지막 날에 받게 될 심판이건, 모든 심판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구원은 일차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죄짓지 않는 삶, 죄짓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자체가 구원이다. 그래서 이런 존재가 되면 당연히 죄인이 받게 되는 심판은 면제된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현재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 중에서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심판을 피해 가는 사람이 있는가? 신자건 불신자건 모든 사람은 모양은 달라도 심판에 참여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짓는 자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형벌이 임한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구원의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관점에서 해결된다. 구원이 완성되었느냐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다. 그러나 구원이 시작되었느냐는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구원받았다. 현재의 측면에서 보면 신자는 구원받고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구원은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동시에 얼마만큼 구원받았느냐는, 정도의 문제가 있다. 죄의 본성과 그 열매가 많으면 많을수록 구원의 정도는 감소하고, 이와 반대일 경우 증가한다.

마찬가지로, 심판도 정도의 문제가 있다. 어느 정도 심판을 받느냐는 문제다. 심판으로부터의 어느 정도 면제되었느냐의 문제다. 심판의 면제와 구원의 완성은 정비례 관계에 있다. 신자의 구원은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틀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이고, 완성될 것이다. 심판의 면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신자는 심판으로부터 면제되기 시작했고, 면제되고 있으며, 마지막 날에 완전히 면제될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사차원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심으로, 신자의 죄에 대한 심판은 영원한 현재에서 이미 면제된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시·공간의 관점에서 볼 때, 심판은 면제되기 시작했고, 면제되고 있으며, 면제될 것이다. 이렇게 구원은 죄와 더불어 죄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