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확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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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구원의 확신은 구원의 본질에 속할까? 구원받으면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게 될까? 반대로,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일까? 현대 기독교인들은 구원파의 영향으로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기독교에서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하 “웨신”) 18장 3항을 보자. “절대로 틀림없는 이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 참 신자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난 연후에야 그 확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도 아니며,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서 구원받았다고 볼 수도 없다는 뜻이다. 참 구원의 확신은 참다운 신자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나서 온다고 가르친다. 부흥 집회 같은 데에 참석해서 즉흥적으로 얻는 구원의 확신은 대부분 자기감정에 도취하여서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다.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성령의 특별한 계시나 어떤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이 필요할까?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필요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독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그에게 값없이 주어진 것들을 그가 성령을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에 색다른 특별한 계시 없이도 통상적인 방편들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그 확신에 도달할 수가 있다” (웨신 18장 3항). 통상적인 방편들이란, 은혜의 방편, 즉 말씀, 기도, 성례, 그리고 성화 된 삶을 의미하고, 이런 것들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닌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상태에서 과거의 가졌던 어떤 감정적인 경험을 근거로 구원의 확신을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에게는 자기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열심히 할 의무가 있다.” (웨신 18장 3항). 따라서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은 성령 안에서 화평과 희락으로 넘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넘치며, 또한 복종하는 일에서는 힘 있고 유쾌하게 된다. 이런 것들은 확신에서 오는 당연한 열매들이다. 그러므로 이 확신을 하게 되면 결코 방탕한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웨신 13장 3항).

구원의 확신은 부동적이지 않다. 그것은 유동적이다. 있다가 없기도 하고 없다가 있기도 하다. 또한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도 있다면 얼마만큼 있고, 없다면 얼마만큼 없느냐의 문제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웨신 18장 4항의 가르침을 주목하자. “참 신자일지라도 그들의 구원의 확신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흔들리며, 약해지며 일시 중단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은 그 확신을 보존하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양심에 상처를 주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어떤 특별한 죄에 빠지거나 어떤 갑작스럽거나 강렬한 시험에 의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의 빛을 숨기시어 그를 경외하는 자일지라도 흑암 중에 행하며 전혀 빛이 없게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 있다. 게으른 신앙생활이 구원의 확신을 흔든다. 죄도 마찬가지다. 다윗이 밧세바와 죄를 범했을 때 자기 구원의 확신이 흔들렸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1-12). 때로는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뜻에 의한 시련 때문에도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 있다. 구약의 욥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욥은 이유 없는 시련을 겪었다. 하나님이 그의 얼굴의 빛을 가리셨다. 그를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셨다.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누구나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련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구원의 확신을 회복했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이렇게 정리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씨와 믿음의 생활이나 그리스도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무에 대한 신실한 마음과 양심이 결코 전적으로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 확신이 적당한 때에 소생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그간의 심한 절망에서도 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이 버티어 내는 것이다”(웨신 18장 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