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맹세와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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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성경에는 맹세와 서원이 있다.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한 약속이고, 서원은 하나님에게 직접 약속한 것을 말한다. 먼저 맹세에 대해 살펴보자. 사람들은 왜 맹세하나? 그 이유는 말에 신용이 없기 때문이다. 맹세는 내용 면에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과거나 현재의 일에 대한 진술 그리고 미래의 일에 대한 약속이다. 과거나 현재의 일에 대해서는 그 상태를 사실 그대로 말하면 된다. 즉 진리를 말하면 된다. 법정에서 진술하는 것이 이 상황에 해당할 것이다.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어떤 약속을 한다. 예를 들어, 갑이 을에게 돈을 빌릴 때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은 말의 신용을 잃어버렸다. 거짓을 진술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더욱 강력한 형태의 약속이나 진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류가 역사 속에서 발전시켜 사용하여 온 것이 맹세다. 맹세는 보통 자기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것에 의하여 약속이나 진술을 하고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진술이 거짓일 때는 자기에게 큰 벌이 내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형태가 성경에서도 사용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2장 2항은 말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만으로 맹세해야 한다. 그리고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전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는 많다. 예를 들어 신 10:20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했고, 예레미야 5:7은,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라고 했으며, 이사야 65:16은,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라고 했다. 이렇게 신자는 맹세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했다.

맹세는 예배의 한 요소이기까지 하다. “합당한 맹세는 경건한 예배의 한 요소이다. 예배 시, 때를 따라 맹세하는 사람이 엄숙하게 하나님을 불러서 그 사람이 주장하거나 약속하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게 하며, 그뿐 아니라 그는 진리에 따라 판단하고 또 그가 서원한 것에 허위가 없는가 판단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2장 1항). 따라서 합당한 맹세는 성경적이며 신자는 이를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맹세하는 것은 구약의 말씀이고, 오히려 신약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예를 들어, 마태복음 5:33-37에서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얼핏 보면 아예 맹세 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본문의 문맥을 살피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예수님은 이 말씀 하시기 전, 당신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7, 18). 즉 예수님은 구약의 맹세를 없애는 대신, 제대로 가르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패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 대신 다른 이름으로 맹세했다. 그들은 맹세의 대상에 따라서 맹세의 구속력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 대신, 하늘로 맹세하고 땅으로 맹세함으로써 맹세의 구속력을 피해가려는 속임수를 썼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하늘이나 땅으로 맹세함으로 거짓을 실행하려는 꼼수를 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더 나아가 사람들이 맹세하지 않더라도 모든 약속과 말은 참되고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마 5:37). 인간이 타락하지 않아 진실하면 특별히 맹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은 이미 타락했다. 거짓말하는 습성에 젖어 있기 때문에 맹세를 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