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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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즉, 선물이다. 믿음은 우리 인간의 부패한 심령에서 나올 수 없다. 믿음은 오로지 성령으로 인하여 거듭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죄인을 중생시킨 후 믿음을 주신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은사이다. 믿음의 선물로 인해서 선택받은 자는 믿게 된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이 거듭나게 한 자는 하나님이 믿게 한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는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죽어서 천당 가는 것 이상이다. 사탄의 왕국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가 구원받은 자이다. 그래서 구원은 내세적인 동시에 현세적이다.

 

이렇게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는데 믿음의 은사는 그들의 심령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내적인 면에서, 성령께서 인간의 심령 깊은 곳에서 믿음을 준다. 그러나 믿음은 내적 사역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외적인 방편을 통해서 같이 일어난다. 이 외적인 방편은 다른 말로 은혜의 방편(the means of grace)이라고도 한다. 은혜의 방편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먼저 말씀의 증거에 의해서 믿음이 역사한다.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가장 일반적인 과정은, 복음 전도자에 의한 말씀 전파이다. 이 말씀을 죄인이 듣는다. 그러나 성령의 내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다. 헛소리로 들린다. 그러다가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면 그때부터 그 말씀을 진리로, 가장 고귀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한 죄인이 회심하게 되는 가장 일반적인 과정이다. 바꾸어 말하면, 절대적 과정은 아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믿음의 은사가 통상적으로 말씀의 증거에 의하여 역사한다고 가르친다. 영적인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지적 무능력이나 선천적 무능력으로 인하여 언어로 된 말씀을 소화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뱃속에서 죽은 영아나, 언어를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 언어를 알아도 성경의 단어를 소화할 수 없는 어린아이, 성인이긴 하지만 아이큐가 한 50밖에 되지 않아서 전혀 논리적 생각을 할 수 없는 사람, 치매 환자, 뇌는 정상적이지만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모든 통로가 막혀 버린 사람, 말하자면 언어를 인식할 수 있는 시각 청각이 마비된 사람, 심지어는 성경 말씀을 전파해 준 사람이 없어서 언어로 된 말씀을 접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의 경우는 믿음의 은사가 언어로 된 성경 말씀의 증거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성령의 내적 역사로만 일어난다고 신앙고백서는 고백한다. 물론 이런 사람이 믿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선택하고 거듭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성령의 내적 사역과 말씀의 외적 사역으로 믿음의 선물을 받는다.

 

믿음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믿음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있다면 얼마만큼 있느냐, 얼마나 큰 믿음을 가졌느냐의 문제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말씀과 성례 집행과 기도에 의하여 믿음의 은혜는 증가하고 강화된다”라고 설명한다 (14장 1항). 말씀과 성례와 기도는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은혜의 방편이다. 은혜의 방편을 성실하게 사용할 때, 즉 말씀 열심히 사랑하고, 성찬식에 성심을 다해 참여하고, 성경적으로 올바른 기도를 열심히 하면 믿음은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