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율법

317

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성경의 율법을 지켜야 할까? 성경, 특히 구약에는 율법이 참 많다. 그 율법 중에는 오늘날에도 무리 없이 적용할만한 것이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의식법을 생각해 보자. 레위기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설명한다. 정결한 짐승은 먹을 수 있지만, 부정한 짐승은 먹지 못한다. 유출병자 정결 의식이 있다. 여인이 해산할 때 치러야 할 의식이 있다. 여러 가지 절기에 대한 법이 있다. 종에 대한 규정이 있다.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형법이 있다. 이런 법들은 오늘날에도 지켜야 할까? 아니면 폐지되었기에 지킬 필요가 없을까?

한편, 십계명을 생각해 보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런 계명은 오늘날에도 지켜야 할까? 어떤 기준으로 특정한 법은 폐지되고 또 어떤 법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율법의 본질과 원리를 이해하면 해결할 수 있다. 율법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놓고 당신의 마음을 그들에게 나타내셨다. 이것이 율법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먼저 인간의 양심에 계시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것을 언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얘들아 내 마음 알지? 우리 잘 지내자.” 이런 마음이 “선악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 선악과를 안 먹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실패한다.

그다음 하나님이 “얘들아 내 마음 알지? 우리 잘 지내자. 서로 사랑하며 지내자”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라는 말입니까?”라고 묻는다. 마음이 부패하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안다고 하더라도 지키기 싫다. 그러자 하나님이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한다. 소위 말하는 십계명으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법이 더 자세하게 나열된다.

하지만 인간은 또다시 묻는다. “하나님,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엇이 살인인가요? 만약 제가 낭떠러지에서 실수로 굴러떨어졌는데, 밑에 있는 사람과 우연히 부딪혔고.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살인인가요? 과실 치사와 고의적 살인이 다 같은 살인인가요? 누군가가 저를 죽이려고 해서 제가 먼저 죽였습니다. 이것도 살인인가요?”라고 묻는다. 하나님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어떤 것이 살인이고 어떤 것이 살인이 아닌지에 대한 자세한 지침을 준다. 인간이 타락하면 할수록, 법은 더욱 자세하게, 더욱 구체적으로, 더욱 세밀하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십계명 이외에 수많은 계명이 있다. 그래서 법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계명은 십계명에 대한 해석이요, 그 해석에 대한 적용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한 해석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의 해석이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얘들아, 잘 지내자”라는 계명의 해석이요, “얘들아, 잘 지내자”라는 말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 마음을 해석한 것이다. 모든 계명의 중심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렇게 후자로 갈수록 계명의 원리에 해당하고, 전자로 갈수록 계명의 적용에 해당한다. 적용이 중심이 아니라 원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율법의 원리로 갈수록 절대적이고 율법의 적용으로 갈수록 유연하다. 이런 면에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그 원리를 지키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를 아무 생각 없이 아무리 철저히 지켜도 율법을 지킨다고 할 수 없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율법을 율법론적으로 (문자적으로) 지켰다. 그 원리를 무시하고 그 껍데기, 그 행위만을 문자적으로 따라하기에 바빴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참으로 지키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