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율법2

300

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중생한 참 신자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 이 말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의롭다고 함을 받는다거나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참 신자는 행위언약 아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 언약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언약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생을, 그렇지 않으면 영 벌에 처하기로 언약을 맺었다. 이 언약이 행위 언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담의 순종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약속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행위 언약에 의해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영 벌에 처하게 되었다. 행위 언약에 의해서 우리는 모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또 다른 언약을 맺는다. 이것을 은혜 언약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불리는 까닭은 인간의 순종이라는 행위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즉 은혜에 의해서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은혜 언약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택한 백성의 죄를 갚게 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참 신자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참 신자는 은혜 언약 아래에 있다.

그렇다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즉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언약 아래에 있는가? 아직 행위 언약 아래에 있다. 이 말은 이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율법을 지킬 능력도 없고 스스로 지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행위 언약 아래에 있는가?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행위 언약에 의해서 약속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아담과 함께 그들 자신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대로 약속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다. 이점이 은혜 언약 아래에 있는 거듭난 참 그리스도인과 행위언약 아래에 있는 세상 모든 사람과의 차이점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전혀 필요치 않다는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율법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 율법은 참 신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그들이 지켜야 할 의무를 알려 준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을 지도하고 강제적으로라도 그것을 행하게 한다. 둘째, 율법은 사람의 본성과 마음과 생활이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율법은 거울과 같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게 된다. 율법이 이와 같다. 예를 들어,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또한 이웃을 마음으로라도 미워하는 자는 이미 살인을 저질렀다고 가르친다. 만약 율법이 없다면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해 놓고서 이것이 왜 악한 것인지 명백히 알기 힘들다. 물론 양심이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양심도 부패해 있기 때문에 강력한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 율법이 이 기능을 한다. 그래서 율법은 자신을 살피게 만들어서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고, 죄로 인하여 겸비하게 하며, 죄를 증오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희생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신의 부패한 마음과 본성을 아무리 제거하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이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가 죽을 수밖에 없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셋째로 율법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한 이생에서 어떠한 고통을 기대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율법은 죄에 대한 우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어떠한 징계를 받을지 알려 준다. 참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율법을 범하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징계가 따른다. 넷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율법에 순종했을 때 그들에게 복을 주기를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율법의 행위 아래에 있다는 말은 아니다. 율법에 순종함으로 받게 되는 복은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기 때문이 아니고,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빚도 지지 않았다. 우리가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뿐,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