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인간의 자유의지

108

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개혁주의 신앙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소멸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개혁주의를 곧장 거부한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개혁주의는 다른 어떤 신앙 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이 자유의지이고 무엇이 자유의지가 아닌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자유의지란” 인간의 의지가 강요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할 때 자신보다 더 큰 외부의 힘이 강압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9장 1항을 보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지에 선천적 자유를 부여해 주셨기 때문에 그 의지는 선이나 악을 행하도록 강요당하거나, 또는 어떤 절대적인 필연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능력의 범위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갖는다. 이것이 자유의지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이해할 때 자유와 능력의 개념을 혼동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많은 사람이 자유에 관해 말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능력에 관해 말한다. 자유가 있다는 것과 그것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 이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 무죄한 상태에서는 자유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자유의지대로 선을 행할 능력이 완전히 있었다. 동시에 악을 행할 가능성도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9장 2항은 이를 잘 설명한다. “인간은, 무죄한 상태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그가 아주 기뻐하시는 것을 원하며 행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소유하였으나 아직 가변적이어서, 인간은 그 상태에서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다.” 무죄 상태에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행할 자유와 능력이 있었지만, 아직 가변적이라고 했다. 즉,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악을 행할 능력도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악을 선택한다.

 

그렇게 함으로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타락한다.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능력을 살펴보면, 먼저 여전히 인간에게는 선과 악을 행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선을 행할 능력이 상실되었다. 오직 악을 행할 열정만 있다. 이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악을 선택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9장 3항에서 인간의 이런 상태를 설명한다. “인간은 타락하여 죄의 상태에 있으므로 말미암아 구원에 수반하는 영적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서 본성의 사람은 영적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고 죄로 죽어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회개시키거나, 또는 회개에 이르도록 준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선택해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먼저 여전히 선과 악을 행할 자유의지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건 일관되게 존재한다. 능력의 경우는 하나님이 선을 행할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이 회복된다. 하지만 동시에 악에 대한 열망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악이 거듭난 사람의 삶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60% 정도는 선을 행하고 40% 정도는 악을 행한다. 이런 상태에 처한 인간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9장 4항에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개시켜 그를 은혜의 상태로 옮기실 때, 하나님은 그를 그가 당하고 있는 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영적으로 선한 것을 그가 자유롭게 결심하며 행할 수 있게 하신다. 그렇지만 그의 남아 있는 부패로 인하여, 선한 것만을 전적으로 결심하지 못하고, 악한 것을 또한 결심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인간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여전히 선과 악에 대한 자유가 있다. 능력 면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100% 회복된다. 악에 대한 동경이 완전히 사라진다. 바로 이점이 무죄 상태에 있었던 인간과 다른 점이다. 무죄 상태에서는 선을 행할 능력과 악에 대한 욕구가 둘 다 있지만, 영광의 상태에 있는 인간은 악을 행할 자유는 있지만, 그 욕구가 사라진다. 오직 선만을 행하게 되어 있다. 이는 마치 벼랑 위에 선 사람이 벼랑 아래로 떨어질 자유가 있지만, 그러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9장 5항은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의지는 오직 영광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때에만, 전적으로 그리고 한결같이 자유로이 선만을 행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