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하나님의 계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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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앞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인식론적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면에서 대답했다. 첫째는 성경 자체의 권위다.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는 없기 때문에 성경은 성경 자체가 증명해 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성령의 내적 사역이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목자의 음성으로 안다. 그리고 이렇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이 있는데,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 두 가지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이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성경을 증명해 주기 위해서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아니라는 말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5항은 이러한 보조적 논증을 설명한다. “우리는 교회의 증언에 감동되고 권유되어 성경을 높고 귀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로마가톨릭처럼 교회가 성경 보다 위에 있지 않으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성경 66권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이 점은 교회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또 흔히 범하기 때문에 권위 있는 증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교회가 최악의 암흑기에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인정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신앙고백서 1장 5항을 보면, “또한 그 내용의 하늘에 관한 일임, 그 교리의 유효함, 그 문체의 장엄함, 그 모든 부분들의 상호일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그 전체의 목적, 사람의 구원의 유일한 길을 충만히 발견케 함, 그리고 기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탁월한 점들과 그것의 전체적 완전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풍성히 증거하는 증거들이다.” 성경 내용은 하나님에 관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늘에 관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읽다 보면 통일성과 일치와 조화와 완전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기록되기 시작해서 1세기까지 대략 1,600년간 기록된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 선지자가 죽으면 또 다른 선지자를 보냈다. 이렇게 해서 무려 1,600년간 최소한 40여 명의 다른 저자가 성경을 썼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야 할까? 내용이 상반되고 모순되며 일치되지 않아야 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한 개인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상과 논리는 변한다. 한 개인의 책에서도 모순과 이율배반은 발견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앞에서 쓴 내용과 과거의 일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이 보통 책을 쓰는 이유는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적이어야 한다. 창조적인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과거의 책이나 사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과거의 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과거 저자나 사상가들의 글에서 허점과 단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이론과 더욱 발달한 논리가 나오는 것이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수많은 저자가 무려 1,600년 동안 쓴 내용이 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진정한 저자가 한 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한 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사람이 바뀌어도 똑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많은 증거가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져 증거에 둔감하여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령이 증거에 대하여 완전히 적대감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2:14의 설명을 보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요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인간의 죄악 된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