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하나님의 예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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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예정 교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가르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연히 예정 교리는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죄 있는 인간이라면 자기 인생에 대해서 자신이 철저히 하나님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자신이 최고의 전결 자가 되기를 원한다. 죄라는 것은 그 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함에 있음을 창세기 3장을 확실히 가르친다. 그러나 예정 교리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죄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예정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죄 있는 인간들의 비위를 맞추는 악한 일이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기분이 어떻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가르칠 의무가 있다. 가르치되 신중하고 조심성 있게 가르쳐야 한다. 예정 교리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이것은 고차원의 교리에 해당한다. 함부로 어설프게 가르쳐서는 안 되고 신중하고 조심성 있게 다루라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강조한다. 이 교리는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는 자기 스스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성경이 가르친 모든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성경 말씀이 가르쳐준 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져도 좋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 예정 교리를 접하고 나면 깨달음이 온다. “아,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믿어서 된 것이 아니구나! 내가 스스로 회개하고 선하게 살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구나! 내가 예수 믿어 구원받은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구나!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선택하고, 거듭나게 하며, 믿게 해 주시고, 선한 삶을 살도록 만드시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와 눈물의 고백이 나온다.

예정 교리에는 목적이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 8항을 보자.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그의 뜻에 유의하고 거기에 순종하여 그들이 받은 유효한 부르심에 대한 확신으로, 그들의 영원한 선택을 확신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떤 사람은 예정 교리가 사람들에게 나태함과 무례함을 조장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정 교리를 통해 나태함과 무례함이 나타나는 이유는 예정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놓았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천당 가겠지”라는 태도를 많은 현대 기독교인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나태하게 한다. 예배 생활도 대충하고, 성결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없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예정론을 숙명론이나 운명론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정론은 신자의 노력과 자유의지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과 자유의지를 통해서 예정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1:10에서 신자들이 더욱 힘써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예정 교리를 가르쳤다고 밝힌다.

예정 교리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개혁주의에 의하면, 하나님께 찬미와 경의와 찬양을 드리고, 겸허하고 근면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위로를 받는다. “나의 나 된 것은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구나!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믿어서 된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고,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자는 신앙생활을 근면하게 한다.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안 사람은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 됨을 포기하고 성령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풍성한 위로를 받는다. 즉, 구원의 확신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