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회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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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회개가 죄로부터 돌이키는 포괄적 행위를 가리킨다면 고백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로 회개의 부분에 속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개인적으로 고백해야 하고, 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5장 6항). 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죄의 용서를 구해야 하나? 죄에 대한 용서는 원래 누가 할 수 있는가?

당신이 강도를 만났다. 심하게 구타를 당해서 뼈가 여러 개 부러졌다. 재산도 다 빼앗겨서 빈털터리가 되었다. 병원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살고 있는데, 당신의 친구가 병문안 와서 말한다. “제가 어제 당신을 이렇게 만든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강도를 용서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아니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 강도를 용서한다는 말입니까? 용서해도 내가 해야지 . . .”

사이몬 비젠탈(Simon Viessenthal)의 『해바라기』(Sunflower)라는 책이 있다. 비젠탈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이 책에 소개한다. 어느 날 그는 노역에서 제외되고 뒷계단을 통해서 캄캄한 병실로 불려간다. 그곳에는 하얀색 천으로 돌돌 감긴 어떤 물체가 침대에 놓여 있다. 그 물체는 심하게 다친 한 독일군 병사다. 그는 심하게 상처를 입어 얼굴을 포함한 온몸이 붕대에 감겨 있다. 그 병사의 이름은 칼(Karl)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 독일군 병사는 고백한다. 자신이 어떻게 나치군이 되었는지, 어떻게 러시아군과 싸웠는지, 어떻게 유대인들을 학살했는지 . . . 수백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나뭇집에 가둬 놓고 불로 태워 죽인 일들 . . .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런 학살행위에 가담했는지 이야기한다.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한 칼은 드디어 왜 비젠탈이 이 병실로 붙들려 왔는지 말한다. 그 병사는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아직도 유대인이 존재한다면 한 명을 자기의 병실로 불러들여서, 그 사람을 통하여 죽기 전에 자기 양심의 가책을 씻으려고 했다. 그는 비젠탈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죄의식 때문에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당신이 유대인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부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대답이 없이는 평화롭게 죽을 수 없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수많은 유대인을 죽인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독일군 병사는 어쩌면 유대인 수용소에서 조만간 죽게 될지도 모르는 어느 이름 모를 유대인에게 용서를 구한다.

비젠탈은 침묵 가운데 붕대에 감긴 병사의 얼굴을 보며, 죽어가는 병사를 응시하면 한참을 있었다. 그 후 그는 아무 말없이 일어나서 병실을 나간다. 그 병사는 용서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비젠탈이 용서하지 않았던 논리는 이러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그 죄 때문에 피해를 본 자다. 즉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가해자에 의해 피해를 본 피해자이다. 그런데 그 독일군 병사에 의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지금 죽고 없다. 용서할 수 있는 자가 존재하지 않기에, 나치에 대한 용서는 있을 수 없다.

어떤가? 비젠탈의 말처럼 죄에 대한 용서는 오로지 죄에 대한 피해자만이 할 수 있지 않은가? 제삼자는 피해자의 죄를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런 면에서 비젠탈의 행동은 논리적이다. 그는 나치 병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피해자가 아니기에 용서할 수 없다. 단 한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면, 죄에 대한 피해자가 누구냐에 대한 대답이다. 인간이 지은 모든 죄에 대한 궁극적 피해자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이점을 잘 깨달았다. 그의 고백을 보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시편 51:4). 물론 다윗은 밧세바에게 죄를 지었다. 우리아에게도 죄를 지었다. 죽은 아이에게도 범죄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만 범죄했다고 한다. 그는 죄의 궁극적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왜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이는 하나님이 죄의 궁극적 피해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