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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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중학교 시절 전체 조례 교감의 훈시에서“거센 파도가 굳센 사공을 만든다”고 한 말은 내 가슴에 큰 파장으로 남았다. 준비 없이 맞은 전쟁에서 밀리고 밀려 경주에서 부산까지 경상도 일부만이 남아 있어 나라가 살아남을 여망이 없었지만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북진하며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보았다. 강산은 초토가 되고 수 백만 생명이 손실되는 좌절과 아픔 속에서 휴전이 되고 국민은 새 나라를 내다보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여 오늘이 되는 기반을 만들었다.

복음을 전한다는 죄목으로 잡힌 바울은 배로 로마에 호송되는 과정에 큰 풍랑을 만나 276명을 태운 큰 배라도 구출 희망이 없었다. 바울은 그들을 안심시키며 배는 잃어도 생명은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며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주리고 먹지 못한지가 14일이라 이제 음식 먹기를 권한다”하고 떡을 들고 감사기도 후 같이 먹고는 힘을 얻었다. 곧 로마에서 멀지 않은 섬에 상륙하며 죄수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인생의 어려운 파도가 휘몰아친다. 오랜 코비드 팬데믹으로 직장에서 레이오프가 되며 살길이 없다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지난 10월 2,158명이 자살을 택하였다. 어찌 일본 뿐이겠나?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 여러가지로 표현되지만 인생은 기다림 바로 그것이다. 식품점이나 우체국에서의 긴 줄, 사춘기에서 성인, 씨를 뿌려 싹과 열매를 보는 것,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는 것은 모두 기다림이다. 이런 기다림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교회는 지금 대림절기로 구주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가난과 고통, 질병과 죽음, 부정과 불의, 분리와 대결이 큰 파도로 밀려오는 세상에 치유와 생명, 자유와 평화, 정의와 사랑으로 오시는 그분을 기다림은 삶의 희망과 의미를 주는 아름다움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나의 평안을 주노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하리라”고 하시는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 받지 않고 영생을 가진다. 키케로가 “숨쉬는 동안 희망할 것이라”하였지만 주를 기다림은 우리 삶의 힘이요 희망이다.

기다림은 자기를 살피고 정리하는 기회다. 팬데믹으로 집에 머물면서 사람들은 집안 정리를 많이 한다. 바울이 탄 배가 큰 파도 속에서 무거운 짐을 모두 버렸다. 기다리며 나의 교만과 자랑, 욕심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겸손과 인내를 배우고 전능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웃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모세는 40년간 양을 치며 기다리는 동안 살인하도록 성급한 목표 달성과 자기 영화를 뒤로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지도자로 변화하였다.

기다림은 지난 날 나의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더욱 그와 친근한 관계를 갖게하며 내 계획 내 방식보다는 하나님의 시간과 뜻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부인과 자기 방식대로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후에 받은 약속의 아들 이삭과 대조와 갈등의 비극을 경험하면서 새롭게 더욱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며 기다리게 되었다. 기다림은 하나님이 일 하실 길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요한은 회개의 세례로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의도하는 평화와 생명이 우리가슴과 사회에 일어나도록 희망과 믿음으로 자기정리를 하며 기다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