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깨어 있어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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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예수는 기도하는 자였다. 당연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예수는 기도했다. 평상시에도 새벽 미명에 기도했고, 시간이 될 때마다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했다. 매순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골고다의 길과 십자가의 때를 앞두고서 예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적과 바램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늘 하던대로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기도했고, 습관을 좇아 기도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기도는 쓸데 없는 일을 하는 것과 같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기도한다고 일이 변하거나 걱정하던 현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가 실질적 효과를 곧바로 준다는 것은 자기 암시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기도는 시간 낭비요 비효율적인 종교행위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심을 갖게 된 이후로 그 쓸데 없는 일에 수많은 시간을 쏟았고, 문명화된 현대 시대에도 여전히 기도는 종교인에게 중요한 신앙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느 종교보다도 기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믿음의 대상인 예수가 기도하던 자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기도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에 빠져 버렸다. 예수는 땀을 피 쏟아내듯 기도를 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도 예수는 골고다의 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운명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기도했다. 쓸데 없는 기도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 중요한 순간, 기도했고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자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는 것이지, 기도의 목적과 방법, 기술과 응용 따위를 공부하거나 학습할 필요가 없다. 단, 예수가 원했던 기도는 “깨어 기도하라”(막 14:38)는 것이었다. 같이 기도하길 바랬던 제자들이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깨어 있어 (나와 같이) 기도하라”고 부탁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면, 어떤 세련되고 특별한 방법과 기술로 기도하기 보다, 깨어 기도하길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깨어 기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 성도가 목사를 찾아가, “목사님!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데 간절한 기도가 안 됩니다. 어떻게 하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목사가 되묻는다. “성도님, 하루를 간절하게 사십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싶으시면, 하루를 간절히 사셔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고자 한다면,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는 절대로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자기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중얼중얼 기도하지 않는다. 환상과 환청을 듣기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도 않고, 기도중에 이상한 신비 체험을 하고자 정신을 놓고 기도하지도 않는다. 간절한 기도자는 똑박똑박 한 마디 한 마디 하나님께 전달하고자 분명하게 기도한다. 그것이 간절한 자의 기도이다. 그래서 깨어 기도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면,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삶을 누구보다 간절히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기도의 삶과 하루의 삶이 다른 자는 절대 깨어 기도할 수 없고,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없다. 삶이 깨어 있고 간절해야 기도도 깨어 있고 간절할 수 있는 것이다.

고난 주간에 참된 기도자로 주님의 고난 가운데 함께 동행하고자 한다면,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기 위해서는 오늘 주어진 삶을 가장 충실하고 신실하게 보내야 한다. 내게 주어진 하루도 간절하고 진실하게 살지 못하면서, 몇 분 하지도 않는 기도에 간절함과 진실함을 드러낼 수 없다. 고난 주간에 진지한 신앙을 살고자 한다면, 매일 주어지는 하루의 삶에 충성하라. 그것이 깨어 있는 기도의 기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