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끝까지 남는 것

150

김주용 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목사

학창시절, 어느 날 담임선생이 무척이나 화가 나서 종례시간에 교실로 들어왔다. 이유인즉, 우리 반의 한 친구가 돈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담임선생은 정황상 우리 반 친구 중에 하나가 가져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고 당장 자수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자수하지도 않았다. 무슨 근거에서 그런 믿음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담임선생은 끝까지 우리 반에 돈을 훔친 친구가 있다고 말하면서, 나오지 않으면 반 전체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요즘 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비일비재했던 공동체 의식이었다. 몇 번의 주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나오지 않자, 담임선생은 전체 기합을 실시했다. 그러면서 “범인이 나올 때까지 단체 기합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투명의자’라는 기합이 시작되었다. 이 기합은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온몸에 고통을 주는 체벌이었다. 30분 … 1시간 … 시간이 지나면서 반 친구들은 한 두 명씩 쓰러지기 시작했고, 도저히 기합의 자세를 취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느끼게 된 친구들이 점점 늘어났다. 거의 2시간이 다 되었을 때, 필자와 한 친구만이 남고 나머지 친구들은 더 이상 자세를 취할 수 없어 쓰러져 있었다. 끝내 담임선생님은 기합을 풀었고, 더 이상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돈은 우리 반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때 필자가 몸이 부서질 것 같고 팔과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지만, 끝까지 기합을 이겨낸 이유는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이 진실임을 담임선생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진리는 끝까지 살아 남는 것이라 믿었다. 진실은 어떤 풍파와 역경에도 쓰러지고 넘어질지언정 포기하거나 뒤돌아서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았었다.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수많은 제국들에게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때로는 노예로 살기도 했고, 식민지가 되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었던 야훼 하나님은 실패한 신이거나 노예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졌었다. 바로 왕이 신으로 섬겨졌던 애굽 나라와 중동 지방의 절대군주 국가였던 대 바벨론국가, 세계 정복의 꿈을 가졌던 헬라 제국, 그리고 모든 길을 하나로 통하게 만들었던 로마제국 등은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삼고 그 백성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국가들이었다. 더욱 그들이 비참했던 것은 그들이 믿었던 야훼 하나님의 권위와 그를 향한 믿음이 철저히 무너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 중 믿음의 소수는 끝까지 그들의 신앙을 지켰다. 노예의 신, 패망의 신으로 야훼 하나님이 비하되고 무시되어 갈지라도, 그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성경을 자신들이 지배 받고 있는 대제국의 언어로 번역하기도 했고 예루살렘의 제단 대신에 회당을 지어 옛 선조가 믿었던 하나님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반역죄를 무릅쓰고 진짜 하나님은 그들을 지배하는 나라의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지켜 준 야훼 하나님임을 전해 주었다.

이런 역사 속에서 끝까지 남은 것이 무엇인가? 애굽을 지켜 준 신이자 왕인 바로인가? 바벨론 제국을 대국가로 만든 바벨론의 신인가? 헬라제국의 수많은 우상들인가? 아니면, 하나님 이상의 절대 권력을 가졌던 로마 황제인가? 야훼 하나님을 노예의 신이라고 무시하고, 패전한 나라의 저주받은 하나님이라고 깔보던 그 때 그 제국들과 황제들, 그들이 믿었던 신들은 지금 모두 역사 속에서 먼지로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은 것은 곧 무너지고 없어지며 묻혀버린 것 같았던 야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고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나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였으나, 지금은 그들이 역사 중심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영향력을 품고 있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주일마다 모여 예배하는 자가 수 억 명에 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남은 것은 진실이다. 진짜이기 때문에 끝까지 지킬 수 있고 남을 수 있으며 보수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다. 끝까지 남아 보수하자. 진리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