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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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아마도 베드로가 몹시 화가난 듯 합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닌 자신과 가깝게 지내던 형제요, 교우 때문였습니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삶에서의 가슴 아픈 상처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관계에서 경험한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도 형제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그를 용서해야 하지만 여전히 미움과 분노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물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얼마만큼 용서해야 합니까, 일 곱번이라도 해야할까요? 그 때 주님의 대답은 베드로를 아예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래도 용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순종하기엔 한 마디로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한정 용서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였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수양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분노와 미움 그리고 증오를 이겨내는 일은 오로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곧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자각에서 시작된 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베드로가 몇 번을 용서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예수님이 소개한 비유의 말씀은 다름아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발견이 증오와 미움을 극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마18:21-35)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보면, 임금께 만 달란트의 빚을 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빚을 청산해야할 기한이 되어 임금앞에 선 그는 갚을 수 있는 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몸과 아내와 자식까지 다 팔아 빚을 청산하는 것인데,  그리한다 하여도 그가 진 빚은 도저히 갚기엔 불가능한 빚이 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임금은 그를 딱하게 여겨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의 모든 빚을 아예 탕감해 주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요, 놀렐루야입니다. 감사요 감격일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였습니다. 바로 자신에게 겨우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의 목을 붙잡고, 소리를 지르며, 빚을 갚으라고 독촉합니다. 그리고 아예 그를 감옥에 집어 넣었던 것입니다. 이런 매정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이런 정신나간 “자아가 실종”된 인간이 있단 말입니까?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고도 어쩌면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정하고 살기를 품은 눈으로 사람을 증오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 바로 이 예수님의 비유의 교훈은 “우리는 값을 수 없는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요, 곧 용서받은 인생이라” 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얻은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이라는 사실입니다.

며칠전 한 젊은이의 죽음을 그의 가족들에게 전해야하는 참으로 가슴아픈 일을 떠맡아야 했습니다. 그의 집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부터 무슨 말로 입을 떼어야할 지 눈앞이 깜깜해 졌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린 아내와 갖난 아기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바로 그들의 앞에서 이 젊은이의 죽음의 소식을 전할 때, 온 가족은 그자리에서 그만 실신할 지경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자식이 그리고 남편이 믿겨지지 않아 수차례 정말 죽었느냐 매달리며 물어보는 가족들앞에 그만 저도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의 맘 속에 그 죽은 젊은이를 향한 수많은 원망어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토록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삶을 포기해야 했는가?” “그토록 삶이 견디기 힘들만큼 고통스럽고 원망스러 웠던가?” “참, 야속하고 미련한 젊은이 아닌가?” 정말 그 젊은이가 겪어야했을 고통스런 순간에 “내가 얼마나 사랑을 입고있는 아들이요, 남편이며, 아빠”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면 그 어떤 불가능한 도전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성도를 가르켜 이렇게 소개합니다: “보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이 위대한 사랑을! 그로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된 것을! 이것이 곧 우리가 아닌가!” (요일 3:1) 바로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You are God’s beloved son & daughter. This is your only true identity.) 마치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일어서실 때, 하늘이 열리며 들리던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렇습니다. 나의 진정한 정체성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 ‘남들이 나에 대해 무어라 말하느냐’ 라는 것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요, 용서받은 사람이란 사실입니다. 이같은 자신에 대한 소중한 이해는 어떤 견디기 힘든 삶의 도전도, 미움과 증오도 능히 극복하게 하는 힘이 될 줄 믿습니다. 아멘!